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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3 조회수507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23일 연중 제25주일



If anyone wishes to be first,
he shall be the last of all and the servant of all.
(Lk.9,35)



제1독서 지혜서 2,12.17-20
제2독서 야고보서 3,16--4,3
복음 루카 9,30-37

미국의 어느 대학에서 이런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지원자 300명을 100명씩 세 그룹으로 나누어 과제를 준 것이지요.

첫 번째 그룹에게는 “오늘 일어난 일을 모두 적으시오.” 두 번째 그룹에게는 “오늘 기분 나빴던 일을 모두 적으시오.” 세 번째 그룹에게는 “오늘 감사했던 일을 모두 적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3주 뒤에 이 세 그룹 중에서 어느 그룹이 가장 만족도가 높았을까요?

세 번째 그룹, 즉 항상 감사했던 일을 생각해서 적었던 그룹이 가장 행복했다고 답을 했답니다. 그들은 스트레스도 거의 받지 않았으며 평상시보다도 더 건강해졌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모두 활기 넘칠 뿐 아니라 밝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했지요. 그러나 두 번째 그룹은 다른 때보다도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았고 표정도 아주 나빠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애인과 헤어지는 등의 안 좋은 일이 일어난 사람도 있었으며, 스트레스를 받아 위장병이 생긴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모든 실험의 결과는 이러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는다. 이들은 다른 사람보다 행복하다고 느끼며, 힘이 넘치고 아프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기쁨을 준다.”

이는 신앙생활을 통해 더욱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온갖 불평불만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하느님의 사랑에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의 모습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은 불평불만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며 구세주 메시아이신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 분명히 커다란 영광이며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의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이야기하셨지만 알아들을 수 없었고, 또한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라는 세속적인 문제로 길에서 논쟁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에 감사하지 못하고,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 더 크고 많은 것을 원하다보니 주님의 뜻을 제대로 따를 수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과연 얼마나 감사하며 살고 있나요? 주님의 믿고 따르고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하며 기쁘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야고보 사도는 오늘 제2독서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청하여도 얻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욕정을 채우는 데에 쓰려고 청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참된 신앙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평화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되길 바라는 마음을 그만둘 때이며, 행복은 그러한 마음이 위로받을 때이며, 기쁨은 비워진 두 마음이 부딪힐 때다(황대권).


저랑 놀자고 해도 거부하며 다른 신부님하고만 친하게 놉니다. 저를 처음봐서 그랬는지... 아무튼 서운한 마음이 드네요.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하고.. 그런데 하느님도 그러시지 않을까요? 우리가 하느님을 멀리한다면... 많은 것을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겠지요. 그리고 무척 서운해하실 것입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저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있습니다. 그 거리는 약 40Km 정도가 되지요. 매일 타다보니 그렇게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환점 전까지는 약간 힘들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반환점을 돌고 나서는 힘이 부쩍 나는 것 같아요. 아마도 마음속에서 이제 지나온 길보다 남아 있다는 길이 짧다고 힘을 불어 넣어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한 오르막을 올라갈 때에도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올라가면 분명히 내리막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힘든 언덕이 있어서 힘이 들지만 분명히 수월한 내리막이 있기에 언덕이 있어도 힘차게 올라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의 인생에 대입해보면 어떨까요? 아직 내게 남아 있는 생이 많다는 긍정적인 마음을 간직한다면 지금의 한 순간들을 ‘이까짓 것’ 하면서 거뜬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또한 지금의 어렵고 힘든 시간들, 그러나 이 시간 뒤에 분명히 기쁘고 즐거운 행복의 시간이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진다면 지금의 어려움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스스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분명히 주셨습니다. 그 능력으로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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