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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5 조회수850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25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My mother and my brothers
are those who hear the word of God and act on it.
(Lk.8,21)



제1독서 잠언 21,1-6.10-13
복음 루카 8,19-21

과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겠지요. 그렇다면 미래는 어떠합니까? 이에 대해 미래는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가 원하는 대로 미래가 변화가 될까요? 이에 대한 정답도 알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라는 이 현재에 최선을 다할 때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나약하고 부족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끊기 힘들어하는 담배를 생각해보지요. 우리나라에서 매년 1월이 되면 담배 소비량이 급격히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2월이 되면 다시 원 상태로 아니, 더 많은 소비량을 보이게 된다고 하지요. 아마 예상하실 것입니다. 연초가 되면서 ‘올해에는 담배를 꼭 끊어야지!’라고 결심했다가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포기하기 때문이지요. 신경 쓸 일, 속상한 일이 없다면 거뜬히 담배도 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끊고 나면 왜 이렇게 속상하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힘들게 끊었던 담배를 다시 손에 쥐게 됩니다.

이렇게 담배 하나 끊는 것도 자기 의지대로 하기 힘듭니다. 그렇다면 더 어려운 이 세상의 삶을 사는데 자기 의지 하나로 버틸 수가 있을까요? 아닙니다. 모든 것에 하느님의 도우심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합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편에 서서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이 세상을 잘 살 수 있는 비결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주관심사는 세상을 늘 향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 때문에 그토록 힘들어하면서도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꽉 움켜잡으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그러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주교님께서 아프리카의 주교님을 만나셨던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지금 아프리카에서는 사제가 많이 부족하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 이유가 사제를 양성할 비용이 없어서라는 것입니다. 한 명의 신학생이 일 년 동안 필요한 비용이 1,500~2,000불 정도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비용을 만들 수가 없어서 사제 양성이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저는 인천교구의 성소국장으로 다른 곳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구의 신학생, 우리 교구의 사제만을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나라에만 복음이 퍼져야 된다고 하시지 않았지요.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셨고, 실제로 주님의 제자들이 그 명령을 받아서 자신의 목숨까지 희생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안에 테두리를 만들고 그 테두리 안만 신경 쓰면 그만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와 형제들처럼 혈육의 관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인간적인 관계를 떠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더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 많은 이들은 계속해서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관계만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매일 같이 주님의 말씀을 산다고 하면서도 내 안의 테두리를 만들기만 했던 제 자신을 깊이 반성하게 됩니다.(혹시 아프리카 신학생을 돕고자 하시는 분이 계시다면 032-765-6965로 문의하세요)

 

세상에서 보기를 바라는 변화, 스스로 그 변화가 되어야 한다.(마하트마 간디)



어제는 동창모임이 부천의 심곡본동성당에서 있었습니다.



팔 때가 아니라 나누어 줄 때

옛날 심한 흉년이 들었던 유럽에서 있었던 일이랍니다. 흉년으로 인해 수확할 것이 없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게 되었지요. 더군다나 식물이 말라 죽어버리는 마름병까지 휩쓸고 지나가서 사람들은 더욱 더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남자의 농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마름병의 영향을 받지 않아 오히려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었지요. 그래서 친구 중에 한 사람이 그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밀농사가 흉년이 들어 밀 값이 매우 뛰었네. 지금이 밀을 팔 때야.”

그러자 이 남자는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아니, 지금은 팔 때가 아니라 나누어 줄 때이네.”

우리는 남의 어려움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 할 때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의 어려움은 곧 내가 그를 도와야 할 때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남의 어려움에 나는 어떤 반응으로 다가섰을까요? 혹시 남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바라보고 나만을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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