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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걱정이 깊어지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6 조회수766 추천수11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



  
복음: 루카 9,7-9






세례자 요한의 죽음



 카라바죠 작, (1608), 성요한 박물관, La Valletta



     < 걱정이 깊어지면 >

          오늘 한 신부님이 요즘 가톨릭교회에 위기가 찾아왔다고 하면서 걱정을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신자들도 순교시대와 비교할 수도 없게 믿음이 약해져있고, 성소자들의 수가 급감하고 있는데 특히 수도회에 입회하는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위기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물론 당면한 어려움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필요는 있지만, 교회가 망할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가 망할까 두려워해야 할 분은 교회를 세워주신 분이시고 우리는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교회를 세우신 분의 능력을 볼 때 교회는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런 걱정을 하면 걱정하는 대로 되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믿는 대로 되어라.”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걱정이 깊어지면 그것을 믿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로 향하는 마차 위에 할머니 한 분이 올라탔습니다. 마부가 물었습니다. "이 마차는 알렉산드리아로 가는데 누구십니까?" "나는 페스트[흑사병]." "그렇다면 마차에서 내리십시오. 나는 당신을 태워 갈 수 없습니다."

"젊은이, 내가 알렉산드리아로 가서 꼭 세 사람만 죽게 할 테니 제발 나를 태워다 주시오." 세 사람 이상 죽게 되면 어떻게 하겠소?" "그 때는 이 칼로 나를 죽이시오." 마부는 할머니가 주는 칼을 받았습니다. "

그래서 태워주어 할머니는 마차가 시에 도착하자마자 마차에서 뛰어 내렸습니다.

얼마 후 알렉산드리아 시에 페스트가 유행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습니다. 단 세 사람만 죽게 하겠다는 약속을 한 할머니가 많은 사람을 죽이자 마부는 화가 나서 칼을 들고 할머니를 찾아 나섰습니다.

얼마 후 마부가 성문에서 할머니를 만나 죽이려 하자 할머니는 왜 나를 죽이려 하오?” 라고 물었습니다.

마부는 화가 나서 버럭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내게 세 사람만 죽이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 저렇게 무수한 사람이 죽었으니 약속대로 당신을 죽이겠소.” 그러자 할머니는 대답했습니다.

"여보시오 젊은이, 내가 죽인 사람은 세 사람이 맞소. 다른 사람들이 죽은 것은 페스트란 말을 듣고 놀라서 두려워하다가 죽은 거요."

14세기 후반 유럽을 휩쓸었던 "검은 죽음의 병" 흑사병은 유럽사람 3명에 1명꼴로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고 합니다. 일단 병이 걸리면 40일 동안 격리시키는 것이 유일한 예방법이어서 외롭게 죽어가야 하는 무서운 병이었고, 그래서 [고독 살인]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유럽 에서 2,500만 명이 흑사병으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산 사람들도 죽은 사람 못지않게 비참하게 연명해야 했는데, 페스트로 인하여 무역은 부진해지고 노동자의 죽음으로 경작지는 급속히 감소했으며 지주들이 파산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로 사회는 공황에 빠졌고 성직자들은 위기 속에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청년의 수가 30만 명인데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그 근심과 불안 때문에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들은 약 1백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경제공황이 오는 이유는 경제공황이 올 기미가 보일 때 미래를 두려워하여 일제히 지갑을 닫아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경제공황이 오면 자신들이 쓰지 않고 모아둔 돈은 휴지종이처럼 값어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미래는 미래가 걱정하게 내버려두고 그냥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면 됩니다.

요즘에 세계와 우리나라 경제 불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합니다. 이번 전 세계와 한국에 닥쳐온 경제 불황은 4년 전에 겪었던 '리먼브러더스' 사태의 공포가 엄습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니 그때보다 더 위험하고 어렵다고 말들 합니다. 20대는 취업에 막히고, 30대는 집값에 깔리고, 50대는 노후 대책이 없어 부자도 가난한 자도 다 행복하지 않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시대, 불안의 시대라고 말을 하며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참조: 다음 카페, 프로페짜이, 경제 불황 두려움 예화]

그러나 세상 창조 이래 언제 한 번 확실한 미래가 있었습니까? 미래는 알 수 없습니다. 걱정한다고 바뀌는 것도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걱정하기 때문에 더 나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걱정은 죄인이나 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기 이전에 걱정할 것이 있었을까요? 카인이 죄를 짓기 이전에 걱정할 것이 있었을까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서 살아갈 걱정과 아이를 키울 걱정 등이 생겨난 것이고, 카인도 동생을 죽이고 나서 다른 민족들이 자신을 죽일까봐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로 헤로데도 두려워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죄가 있으니 미래가 두렵기만 한 것입니다. 헤로데는 자신이 죽인 요한이 살아났다고 두려워하고, 어떤 이들은 엘리야나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 살아났다고 호들갑을 떱니다. 예수님은 그냥 예수님입니다. 미래는 그냥 미래입니다. 우리의 영역이 아닌데 판단하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쩌면 두려워하는 근저엔 자신 안에 죄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걱정을 미래의 주인께 맡겨드리고 우리는 오늘을 살아갑시다. 걱정이 많은 사람치고 좋은 결말을 맺은 사람이 없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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