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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7 조회수786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26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But Herod said,
“John I beheaded.
Who then is this about whom I hear such things?”
And he kept trying to see him.
(Lk.9,9)


제1독서 코헬렛 1,2-11
복음 루카 9,7-9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심심치 않게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바꿔줘~~ 브라우니, 물어!!”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말이라는데 아주 큰 인기이지요. 상류층의 어떤 부인이 가게 점원에게 무조건 바꿔달라고 요구를 합니다. 그때 하는 말, “바꿔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요구에 점원의 조리 있는 말이 이어지고, 이 말에 궁지에 몰리게 되면 자기가 가지고 온 강아지 인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브라우니, 물어!”

솔직히 왜 이 개그 프로그램이 재미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개그 프로그램을 보았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도 사람들의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문득 우리들의 일상 모습과 비슷하지 않은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다시 말해서 자신과 비슷한 일상의 삶에서 공통점을 느끼고 그래서 그 상황을 재미있게 끌어낸 이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는 주님께 이러한 억지를 종종 부립니다. 자신의 상황이 맘에 들지 않는다고, 또 어렵고 힘들다면서 그 상황을 바꿔달라고 기도하지요. 그러나 그 상황이 바뀔 때도 있지만,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특히 내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에서 나온 것임을 깨닫게 되면서도 계속해서 우리의 요구는 ‘바꿔줘’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잘못이 있었음을 알면서도 다른 이유를 들어 자신은 정당함을 피력하고 있지요. 그 모습이 앞선 개그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브라우니, 물어!”라는 엉뚱한 말과 똑같은 것이 아닐까요?

억지로 짜 맞추기 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주님 앞에 억지를 부리고 있는 내 자신을 반성해보자는 의미로 상황을 맞춰 보았음을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무튼 이러한 억지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 영주를 보세요. 그는 양녀의 춤 값으로 의로운 세례자 요한의 목을 쳤습니다. 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불안한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예수님의 활약상을 듣고는 세례자 요한이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가 라는 불안감 속에 살게 되지요. 바로 그 역시 억지로 세례자 요한을 죽음으로 몰았고, 그 결과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 역시 더 이상 주님의 뜻에 반대되는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뜻에 인간적인 욕심을 내세워 억지를 부리는 모습에서도 탈피해야 할 것입니다. 대신 항상 주님께 순명할 수 있는 우리,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이 주는 불안감에서 벗어나 주님 안에서 참 행복을 체험할 수 있으니까요.

 

눈이 보이지 않는 것보다, 마음이 보이지 않는 것이 두렵다(탈무드).



죽산성지 내의 표지석.



죽산성지를 다녀와서

어제는 교구청에서 근무하는 신부님과 수녀님 그리고 직원 모두가 두 분 주교님을 모시고 수원교구의 죽산성지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9월 순교자 성월을 맞이해서 아주 뜻 깊은 하루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죽산성지에는 2000년에 다녀온 뒤 처음으로 방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이 바뀌었더군요. 어떻게 보면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었는데, 2000년에 방문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과 정성을 쏟았을까 싶습니다. 하긴 순교자들이 보여준 최초의 피와 땀이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성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는 곳이 된 것이지요.

만약 이곳에 순교자들이 없었다면 성지가 될 수 있었을까요? 당시에는 이렇게 순교하여 효수되는 이곳이 정말로 싫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거 순교자들의 땀과 피로 인해 지금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곳으로 변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 자리가 너무나 싫을 때가 있습니다.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고, 그래서 주님께 “바꿔줘”라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고 힘든 자리를 이겨냈을 때 바로 영광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과거 우리의 순교자들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렇게 이겨내는 우리가 될 때, 우리 역시 현대의 또 다른 순교자가 되어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면 바로 지금이 주님을 증거 할 가장 좋은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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