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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결부 [배척받는 이유]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27 조회수317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고 이르셨다.  <루카 9,18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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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하느님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죽임을 당하여야 했으며, 다시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했습니다. 왜일까요. 예수님께서 그렇게 되시어 지금의 그리스도적인 삶은 극적으로 달라졌을까요. 과연 그리스도적인 삶은 어떠할까요.

누구라도 그리스도적인 삶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승리로 말미암아 평탄하리라고는 결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는다 할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적인 고통에 대하여 더욱 더 잘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승리가 아무 소용이 없이 여겨집니다.

예수님과 일치된 그리스도적인 삶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
많은 고난을 겪고 사람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아버지'에게서 사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1요한 4,7)

하지만 세상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만일 세상이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세상이 사랑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이 사랑을 배척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그런데 세상은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을 미워하고 배척하는게 바로 세상인 것입니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아버지 사랑이 없습니다" (1요한 2,15 참조)
아버지(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까지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상과의 관계가 밀접하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에 비하면 하느님과의 관계가 깊은 사람은 사랑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사랑이신 하느님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의 관계까지도 포함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는 그리하여 '아버지와의 관계'와 '사랑의 관계'가 친밀하게 결부되어져 있습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적인 삶 역시 '아버지와 사랑'의 친밀한 '크로스 관계'입니다.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고 또한 세상은 그래서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저는 아버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요한 17,25)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요한 17,2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랑이신 아버지'에게서 사랑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 4,7 참조) 세상은 아버지와 아버지의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사랑)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탓입니다
사랑은 배척을 받아야 했고 사랑은 죽임을 당하며 사랑은 다시 살아나야만 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함으로써 하느님은 멀리하게 되어집니다. 세상으로부터는 사랑이 오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사랑은 점점 멀리하게 됩니다. 하느님 자신을 내어주는 아버지의 사랑을 미워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 예수님의 사랑을 배척하도록 되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은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변할 수 없습니다. 악은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변할 수가 없다는 것과 같습니다. [ 교리서 409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 (1요한 5,19) ] 이같은 비극적인 상황에서 사랑의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게 되며 그리스도적인 삶은 고난과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세상에 뿌리 내려져 있는 악은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에 세상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인간의 고통을 구체적인 죄들의 결과로 판단하는데에는 크게 조심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고통을 인간 역사에서 개인적 행동과 사회적 과정의 죄스런 배경에서 분리시켜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인간 고통의 근저에는 죄와의 복합적인 연루관계가 있다는 비판 기준을 배격할 수 없다는 것도 진실인 것입니다"

"죄가 태초 이래로 현세의 역사 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비할데 없이 드높은 사랑을 통하여 아드님을 "내어 주심"으로써 이분께서 바로 인간의 악의 뿌리 자체를 쳐부시고 인간의 고통의 세계 일체에 구원적인 방법으로 접근하게 하셨습니다"

"구원은 악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고통의 문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르면 인간을 악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하느님께서 세상에 당신 아들을 주셨습니다.  "주신다"는 말씀 자체가 이
해방은 외아들 그분에 의하여 그분 자신의 고통을 통하여 성취되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당신 아들을 "주시는" 아버지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이며 인간을 위한 사랑, 즉 구원적인 사랑입니다" 

"그분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고통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육신의 고통이든, 영혼의 고통이든 인간의 모든 고통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 그리스도께서는 인간 고통을 바로 당신 자신에게 받아들임으로써 인간 고통의 세계에 다가오심을 이루셨습니다"  (복자 요한 바오로2세 교황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아버지의 사람들 또한 '아버지의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방식으로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사랑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아니다 한다면 그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악을 용납하는 '어둠의 영'이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분의 활동은 일차적으로 고통 속에서 도움을 찾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악은 인간 고통의 원인이 되고 그런 까닭에 악의 반대인 사랑을 배척할 수 밖에 없습니다. 악이 사랑을 배척하는 것은, 악을 싫어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헤로데는 그리스도(사랑)의 오심을 반대하여 무죄한 아기들을 살해하고 세례자 요한도 살해하였습니다. 현대적으로 본다면 오늘날 자기 안에 그리스도(사랑)의 오심을 반대한다면 바로 헤로데와 같이 사랑 대신에 '악의 인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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