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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남과 나눔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 성모성당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2-09-30 조회수622 추천수9 반대(0) 신고

 
한가위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 루카 12,15-21


 
추석 명절미사( 1)


만남과 나눔


추석을 맞이하여 기쁘고 복된 시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15일로 다른 말로는 한가위 라고도 부릅니다. 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8월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유래는 잘 몰라도 분명 큰 날은 큰 날입니다. 민족고유의 명절이 되어 민족 대이동이 이루어지니 말입니다. 이 큰 날에 만남과 나눔의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던 옛날, 추워서 추석, 서러워서 설이랍니다. 가을의 넉넉함, 풍요로움을 누려야 하는데 넉넉지 못하니 안타까움이 남고, 하느님과 조상들께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 없어서 너무 추웠답니다. 그래도 서로를 위로하고 힘을 주며 따뜻한 정을 나누는 마음만큼은 한없이 넉넉하고 풍요로운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명절에 특히 부부 싸움 등 가정불화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명절증후근 이라는 병도 생겼습니다. 외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속을 보면 어쩔 수 없는 만남의 시간을 갖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시부모와 장인장모를 차별한다고 불편해 하고, 며느리는 부엌에서 일꾼처럼 부려먹으면서 당신 딸은 친정에 속히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마음은 결국 이기적인 마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사위가 청소나 설거지를 돕고 하는 모습을 보면 흐뭇하고 당신 아들이 하면 사내자식이 부엌을 드나든다고 싫어합니다. 어머니 눈치 봐야죠. 아내 눈치 봐야죠. 정말 남자들도 스트레스 받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명절은 큰 날이 아니라 큰일 날 날로 변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큽니다.


추석은 우리에게 큰 날입니다. 이 날 우리는 하느님을 만나고 조상을 만나고 부모를 만나며 형제자매를, 이웃을 만납니다. 그리고 함께 기도를 하고 마음을 나누며 우리의 미래를 키워갑니다. 중국사람은 만월을 상징하는 월병을 만들었지만 우리 조상들은 반달모양의 송편을 만들어 계속 자라나기를 희망했습니다. 풍요로움이 커가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리고 그 송편을 나눔으로써 서로의 사랑과 정을 확인하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았습니다. 하나를 나눔으로써 두 배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루가12,15) 고 하십니다. 명절에 탐욕으로 인해 얼굴 붉히는 일 없기를 기대합니다. 어떤 부자가 많은 소출을 얻게 되어 혼자 궁리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창고를 늘리는 일이었습니다. 혼자 궁리했기 때문에 결국은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혼자 궁리했기에 육적인 것에 머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궁리했더라면 영적인 기쁨을 누렸을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로마8,5-6).


그러므로 욕심 부리지 말고 만남의 기쁨과 나눔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풍요로워지고 버리면 버릴수록 자유로워집니다-성 빈첸시오-.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만남과 나눔은 우리 모두를 풍요롭게 하고 기쁘게 합니다. 조상과 부모형제, 이웃이 서로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일이며 이런 은혜를 넉넉히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만남 안에 주님의 자리를 꼭 챙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주님께서 차고 넘치게 주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쁘고 즐거운 명절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추석 명절미사 (2)


추석명절을 맞이하여 기쁨과 평화가 충만한 날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무엇보다도 감사하는 날입니다. 하느님과 조상님들을 기억하고 베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날입니다. 부모와 이웃에 감사하고 그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명절의 의미가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보다 앞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합니다. 천상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시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분을 만납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부모, 형제, 친척, 이웃을 만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으며 사랑의 정을 키우는 날입니다. 아무쪼록 지금 내가 여기에 있음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처지와 환경이 어떠하든 주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을 얻은 것이니 만큼 찬미의 노래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생명의 근원이신 부모의 은혜에 대한 보은에 남다른 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부모에 대한 효의 실천은 세 가지 양상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첫째가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잘 보전하여 후손에게 길이 전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벼슬길에 올라서 부모의 이름을 드높여 부모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를 정성껏 봉양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부모님을 정성껏 봉양하고 효도함은 돌아가신 후에도 제사를 통해서 계속되었습니다.
 

그것은 죽음으로써 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든지 생이 계속됨을 믿었고 살아계실 때와 같이 가족공동체와 계속적인 유대 관계를 유지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제사는 죽은 이들을 계속 공경함으로써 효도를 이어가는 방법이며 결국 제사의 의의는 은혜를 갚음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하느님의 계명과 아무 마찰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이나 조상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고 예를 드리는 것은 신앙에 위배되지 않습니다. 이는 죄나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생전에성균관에서 명예학위를 받게 되셨는데 매스컴은 추기경님께서 과연 성균관의 예법에 따라 절을 할 것인가? 에 관심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추기경님께서는 서슴없이 절을 하셨습니다. 공경하는 마음으로 예를 갖추었다면 그게 우상숭배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천주교는 제사문제로 박해를 받았습니다. 조상공경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우상숭배로 판단하였기 때문에 조상제사를 철폐하였고 이는 부모의 은덕을 망각하는 인륜을 저버린 짐승만도 못한 무리라고 하여 천주교신자는 죽어야 된다는 결론에 이르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1939년 12월8일에 이르러서야 교황청은 조상의 제사는 우상숭배가 아닌 조상에게 효성을 표시하는 미풍양속이며 민족의 훌륭한 유산이므로 수용해야 하고 토착화해야 한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아픔이 컸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제사를 지냄에 있어서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신주 문제입니다. 신주는 밤나무로 만들었는데 구멍이 뚫려있습니다. 그 신주에는 조상의 혼이 마물러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은 혼백(넋)의 갈림길이라고 믿었고, 이 혼이 의지할 곳이 없어서 떠돌아다니는데 떠돌아다니게 그냥 두는 것은 자식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혼이 머무르도록 하기 위해서 안식처를 만들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신주의 형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제사 때는 바로 그 신주를 모셨습니다. 신주를 모신 것은 돌아가신 이를 섬기기 위해서는 볼 수 있는 상이 필요했고 신주는 바로 돌아가신 이의 상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해 돌아가신 이를 만나는 하나의 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그 영혼이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람은 단 한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브9,27) 그리하여 천국이나 지옥, 아니면 연옥에 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따라서 죽은 이의 혼이 떠돌아다닌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과 근본적으로 대치됩니다. 만약 죽은 이의 혼이 떠돌아다닌다면 세상은 난리판이 될 것입니다. 그 말은 곧 지옥으로부터의 탈출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십니다. 그렇게 허술한 하느님을 누가 하느님으로 인정할 수 있겠습니까? 살아있는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다 하느님의 권능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주를 모시는 것은 잘못입니다.



두 번째는 제사 날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 음식을 잡수시러 온다는 사상과 조상들을 잘 공경하면 조상이 복을 준다는 사상은 바꿔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돌아가신 분들이 음식을 잡수러 오시기 때문에 음식을 차렸다면 신앙과 위배되는 것입니다.


돌아가신 분은 음식을 잡숫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생전에 좋아하셨던 음식이나 못해드린 음식을 차려 대접함으로써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기억하는 것이지 조상이 와서 잡숫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리고 복을 주고 안 주고는 조상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혼을 부르고 음식을 차리고 거기에 복을 기원하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들이 천상에 들지 않았다면 천상에 오르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천상에 계시다면 그분들이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심을 믿습니다. 제사의 핵심은 효요,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 천주교회의 전통적인 제사는 무엇입니까? 미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 아버지께 온전히 바치신 십자가의 죽음을 제사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리고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하시며 이 제사가 계속 이어지기를 명하셨습니다. 명절에는 특별히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며 아직 천상의 영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 연옥에 계시는 분이 있다면 우리의 기도와 희생으로 하루빨리 하느님나라에 갈 수 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위령미사는 바로 교회공동체가 한마음으로 세상을 떠난 분들을 위해 자비를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주 미사봉헌을 하여 효를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아니면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고유한 미풍양속인 제사를 봉헌하며 세상을 떠난 조상이나 부모, 형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꼭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합니다.



참고로 불교의 49재를 말씀 드립니다. 49재는 한마디로 사람이 죽은 뒤 49일째에 치르는 불교식 제사의례, 즉 불공입니다. 석가모니께서는 25세에 출가하여 6년의 고행을 한 후 득도하여 48년간 설법을 하셨고 49년째에 세상나이 80세에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서 49라는 숫자가 중요하고 또 불교에서는 윤회설을 믿는데 사람이 죽은 날로부터 49재를 치르는 날 사이의 기간을 ‘중유’라고 하여 이 기간에 생전의 업에 따라서 다음세계가 결정된다고 봅니다. 즉 모든 중생은 천상, 인간, 축생, 아수라(싸우다),아귀(다툼),지옥의 여섯 세계를 윤회하며 이 가운데 아수라, 아귀, 지옥을 ‘삼악도’라 하여 고통과 지옥으로 가득찬 세계로 보고 있습니다. 바로 49재는 죽은 자가 삼악도에 들어가지 않고 보다 나은 세상에 태어나기를 비는 불공입니다. 49일째 모든 것이 마지막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그날을 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49재 미사를 봉헌해 달라는 말은 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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