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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3 조회수660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No one who sets a hand to the plow
and looks to what was left behind is
fit for the Kingdom of God.
(Lk.9,62)


제1독서 욥기 9,1-12.14-16
복음 루카 9,57-62

며칠 전에 어떤 분의 차를 얻어 탈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 안에서 도로에 자전거 탄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워낙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하다보니 어떤 자전거를 타고 있는지 유심히 쳐다보고 있었지요. 이런 저를 보며 차를 운전하시던 이분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저도 도로에서 자전거 타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교통이 이렇게 복잡한데 몰상식하게 자전거를 타고서 도로로 나오다니요? 저 사람들은 도대체 기본이 안 되어 있어.”

기본이란 어떤 것일까요? 자기만의 기본을 세워서 그 기본에 맞으면 좋고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솔직히 저는 이 분의 말에 기분이 상당히 안 좋았습니다. 마치 제가 욕을 먹고 있는 기분이었거든요. 아마 그분은 제가 자전거 좋아하는 것을 몰랐나 봅니다. 그래서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던 것이지요.

자신만의 기본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이 생각하는 기본도 인정하면서 서로간의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만이 어쩌면 하느님과도 조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실까요? 누구는 사랑하고, 누구는 미워하실 분일까요?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할 것 없이 모든 이와 조화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 하느님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떠해야 할까요? 우리 역시 하느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처럼 이런 사람 저런 사람 할 것 없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라.”라고 부르시지요. 이 말씀을 들은 어떤 이는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 달라고 청하고, 또 다른 사람은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청을 매정할 정도로 거부하시지요. 사랑을 그토록 강조하셨던 주님께서 왜 이렇게 매정하실까요?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대신 세상의 이런 면, 저런 면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야만 주님을 진정으로 제대로 따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뜻대로만 사는 것이 기본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세상의 이런저런 모습과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기본입니다. 이렇게 기본을 잘 지키고 살아가는 나. 그래야 주님을 가장 잘 따르는 참된 제자가 될 것입니다.

 

램프를 만들어 낸 것은 어둠이고, 나침반을 만들어 낸 것은 안개고, 탐험하게 만든 것은 배고픔이었다. 그리고 일의 가치를 깨닫기 위해서는 의기소침한 나날이 필요했다(빅토르 위고).



성소국 차입니다. 예쁘죠?



축복을 빌어주는 사람

선배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신부님께서는 차가 갑자기 끼어들면 또는 앞차가 차량의 흐름을 방해할 때면 그 차를 향해 축복을 빌어준다고 합니다. 아주 의외였습니다. 보통 운전할 때면 항상 내가 중심이 되지 않습니까? 다른 운전수가 실수를 하면 그렇게 욕을 해대지만, 자신이 실수를 하면 ‘그럴 수가 있지’라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이 신부님께서는 욕하는 대신에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그렇게 한 번 해보았습니다.

갑자기 차가 끼어들면 축복을 빌어주고, 차의 흐름을 막아도 축복 주고, 몰상식한 운전수를 봐도 축복을 빌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처음에는 화가 났지만 금방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웃으면서 운전할 수가 있더군요.

사실 화를 낸다고 또 경적을 울리면서 빵빵댄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음만 불편해질 뿐이지요. 반대로 축복을 빌어주고 웃으면 이 역시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편한 마음, 행복한 마음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는 과연 축복을 주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욕을 하는 사람입니까? 어떠한 상황에서도 축복을 빌어주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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