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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한 자유인의 삶 - 10.3. 수,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3 조회수414 추천수8 반대(0) 신고

2012.10.3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욥기9,1-12.14-16 루카9,57-62

 

 

 

 

 



영원한 자유인의 삶

 

 

 

 

 


여기는 독일 북부 담메라는 참으로 고요한 시골에 위치한 수도원입니다.

여기서 며칠 간 회의 앞선 피정이 있게 됩니다.


독일은 어느 지방이나 자연과 잘 조화되어 있고 균형 잡혀 있어

또 고풍스럽고 평화스러워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습니다.

사람들의 얼굴도 여유롭고 넉넉해 보입니다.

 



새벽 2시 사방이 너무 고요해 허무감에 잠이 깨어 강론을 씁니다.

어디서든 늘 새벽이면 허무의 노크에 잠을 깹니다.


저에게 허무는 하느님의 손길입니다.

삶의 본질은 허무 같습니다.


모든 삶의 거품이, 환상이 사라진 순수한 상태가 허무이겠고

바로 여기서 하느님을 만남으로 허무는 영원이 됩니다.


얼마 전 낭송했던 시의 마지막 연도 생각이 납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주님을 따라 살 때 하루하루가 영원(永遠)입니다.

반면 주님을 잊어버리고 살면 하루하루가 허무(虛無)입니다.


며칠 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11시간

힘차게 끝없이 펼쳐진 높은 창공을 나는 용감한 비행기가

참 고독하고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행시간 내내 전광판의 세계지도에 중국을 관통해

중앙아시아와 러시아를 경유하여 유럽 내 독일의 프랑크푸르트를 향해

잘도 날아가는 비행기를 바라보면서 하느님을 찾는 수도승을 생각했습니다.

 


비행기처럼 목적지를 향한 분명한 여정이 아니라

아무리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어도

하느님 목표 없는 맹목적인 우리 삶의 여정이라면 결과는 허무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영원한 삶에 대해 좋은 가르침을 줍니다.

바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욥이 고백하는 영원하신 하느님을 만납니다.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 하리오?

  …측량할 수 없는 위엄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

 


예수님을 충실히 따를 때

주님은 우리 영의 눈을 열어 주시어 이런 하느님을 체험하게 하십니다.


영원한 삶의 길은 주님을 따르는 길 하나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저는 영원한 자유인의 삶을 세 측면에서 묵상했습니다.

 

 

 

 

 



첫째, 장소에 집착하지 않을 때 영원한 자유인의 삶입니다.

 


장소에 머물러 정주하되 거기가 절대인양 안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유하여 소유되지 말고 내적으로 흐르는 물처럼 살라는 것입니다.


지상의 장소는 잠시 머물다 가는 정류장 같은 거처일 뿐

영원히 머물 장소는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만이 영원한 정주처(定住處)요

주님을 충실히 따를 때 비로소 이뤄지는 하느님 안의 정주입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는 주님의 고백에서


지상의 장소에서 완전 이탈하여

하느님 안에 영원한 정주처를 잡은 대 자유인 예수님을 봅니다.

 


이런 주님을 따라 살 때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장소에 집착하지 않는

영원한 자유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람들에게 집착하지 않을 때 영원한 자유인의 삶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셨지만 결코 집착하진 않았습니다.

자유롭게 하는 사랑, 생명을 주는 사랑은 무집착의 사랑뿐입니다.

눈먼 집착의 사랑이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자유를 속박합니다.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라는 주님의 말씀에서

저는 사람들에 집착하여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즉각 이해했습니다.

 


사람들에 집착할 때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특히 주님의 일은 더욱 그러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여

예수님께 집착했던 베드로에 대한 주님의 가차 없는 질타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셋째, 과거에 집착하지 않을 때 영원한 자유인의 삶입니다.

 


과거에 대한 집착에서, 상처에서 벗어나기는 얼마나 힘든지요.

많은 이들이 과거의 끈에 매여 집착의 삶을 삽니다.

하루하루 주님을 따라 지금 여기를 살 때에야 과거의 집착에서 해방입니다.

 


이 또한 부단한 영적전쟁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을 따라 하느님을 향한 여정에 오른 자가

과거에 집착하여 연연할 때 제자로선 무조건 실격입니다.

 


정체성의 혼돈과 더불어 내적분열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마치 목표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자가

자꾸 뒤를 바라보는 경우와 흡사합니다.

 

 

 

 

 


하루하루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을 따라 하느님을 향해 살아갈 때

장소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과거로부터 이탈하여 자유롭습니다.

 


주님처럼 영원한 자유인의 삶입니다.

 



주님은 매일 미사를 통해

당신을 항구히 따를 수 있는 사랑의 열정과 힘을 주십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시편27,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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