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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5 조회수809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0월 5일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Whoever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Whoever rejects you rejects me.
And whoever rejects me rejects the one who sent me.
(Lk.10,16)



제1독서 욥기 38,1.12-21; 40,3-5
복음 루카 10,13-16

얼마 전에 감동 깊게 읽은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전작 역시 읽으면서 느끼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에 나온 책 역시 구입해서 잘 읽었지요. 어떻게 보면 자기 계발서 라고도 할 수 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끔 도움을 주었기에 다른 이들에게도 추천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우연히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이분의 책을 직접 지명한 원색적인 비난의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즉, ‘이런 자기 계발서 류의 책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들은 개 쓰레기라는 생각을 한다.’라고 대중의 인기를 무시할 수 없는 작품을 하시는 분의 말이 올라와 있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인터넷을 통해 약간의 설전이 있었고 곧바로 화해했다는 기사가 올라오기는 했지만, 씁쓸한 기분이 들더군요.

자기 계발서라고 할지라도 작가는 이 글을 쓰기 위해서 오랫동안 고민을 하고 노력을 했을 텐데, 그렇게 쉽게 ‘쓰레기’라고 단정을 내린다는 것(나름대로 이유는 있었지만)은 잘못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자기 자신도 작품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작품이 다른 이들에게 ‘쓰레기’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과연 기분이 좋을까요? 그러면서 동시에 저 역시 남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했을 때가 종종 있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 역시 그 기사만을 보고서 그분의 비판을 나만의 잣대를 내세워 쉽게 판단하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내가 단죄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대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힘주어 말씀하셨고, 또한 당신의 삶을 통해서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를 직접 보여주시기도 했지요.

이 이웃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기 위해서는 이웃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입장과 그 이웃의 입장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이웃의 입장에서 생각할 때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가리키면서 불행선언을 하십니다. 이 도시들은 당시에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도 가장 번화한 도시였지요. 그런데 이 도시의 사람들이 저승까지 덜어질 것이라면서 악담을 퍼부으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이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즉, 회개하지 않고 자기 자신만을 내세우면서 주님께서 강조하신 이웃 사랑의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고, 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며, 나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물리치는 사람이다.”

이웃의 말을 듣는 사람, 이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곧 주님의 말을 듣고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와 이웃의 관계를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나는 과연 이웃의 말을 듣고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부끄러운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간절하다는 것. 더구나 사람이 사람을 간절하게 그리워한다는 것만큼 인생에서 중요한 일이 있겠는가(신경숙).



극장에 왔습니다. 오랜만에 영화보며 여유를 누렸네요. 재미있었어요.



개미를 보면서

어제 아침 자전거를 타다가 잠깐 쉬는데, 우연히 개미 한 마리를 보게 되었네요. 이 개미는 자신의 몸보다도 훨씬 큰 먹이를 운반하고 있더군요. 어쩌면 그 무게 역시 개미의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도 잠시도 쉬지 않고 나르고 있었습니다. 문득 가볍고 크기도 조그마한 먹이들을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무겁고 큰 먹이를 힘들게 운반할까 싶었습니다. 혹시 자신의 앞에 항상 가볍고 작은 먹이만 찾을 수 있는 것만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우리의 삶 역시 마찬가지지요. 우리의 앞길에 항상 가볍고 쉬운 일만 있습니까? 아니지요. 어렵고 힘든 일, 무겁고 커다란 일들이 내 앞길을 막아서고 있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 순간에 무조건 피하십니까? 아닙니다. 이것 역시 나의 삶이기에 그대로 뚫고 지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무겁고 큰 먹이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자기 집까지 나르는 개미. 개미도 이렇게 하는데 우리는 어떤가요? 불평불만만 하면서 어떻게 하면 피할까를 궁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개미보다 못한 인간은 되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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