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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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께서 맺어주셨으니"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6 조회수723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27주일, 수원교구 설정 50주년 개막미사


<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


  
복음: 마르코 10,2-16






묵주의 성모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7), 빈 미술사 박물관



     < "하느님께서 맺어주셨으니" >

오늘은 수원교구 모든 성당에서 수원교구 설정 50주년을 맞는 개막미사가 행해집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이 대희년은 2013년의 마지막 주일인 1229일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주교님께서는 오늘 개막미사에서 교구설정 50주년 기념 및 신앙의 해 교구장 사목교서를 강론 때 읽어주기를 권고하십니다.

먼저 교구장님은 현재 수원교구가 당면한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하십니다.

우리 교구의 급속한 외적 성장 이면에는 극복해야 할 적지 않은 과제가 상존하고 있습니다. 교구 시노두스 당시 세례자 수와 주일미사 참례율이 하락세를 보이고 쉬는 교우 수가 증가하던 상황은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는 지금에도 큰 변화가 없습니다.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신앙생활에서 멀어지고 있으며, 미사 전례 안에서도 활력과 영성을 얻지 못하고, 선교를 향한 열정은 식어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활기찬 교회의 모습과는 달리, 내적으로는 심각한 신앙의 갈등과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냉담자의 증가와 세례자수의 감소, 미사 참례율의 하락세 등은 수원교구만이 아니라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현 시대의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적인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주교님은 참 신앙의 의미를 되찾기를 촉구하십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교구 공동체가 한 단계 성숙한 교회로 발돋움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교구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가 일체가 되어 영적으로 쇄신되는 일입니다. 그동안 우리 교구가 교회 활동의 외적인 부분에 관심과 노력을 쏟았다면, 이제 교회 신앙 선조들의 열정적인 신앙심을 본받아 초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새롭게 발견하고, 신앙의 본질에 충실해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이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일까요? 주교님은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원의 역사의 중심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하면서 그분 안에서 참된 행복과 평화를 발견하고, 우리의 죽음과 삶, 고통과 기쁨, 십자가와 부활의 의미를 깨닫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삶의 규범과 기준으로 삼고 따르며, 그분과 깊은 인격적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나의 정체성은 나 혼자만이 아닌 나와 관계되는 하느님, 부모님, 형제, 친구,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찾아집니다. 그렇다면 주교님께서 말씀하시는 나의 정체성은 그리스도와의 친교를 통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해 교구장 주교님은 우리 교구의 실천운동으로써 잘 섬기겠습니다!”라는 영성운동을 전개하고 그 운동의 실천적 기반으로 우리 교구가 전통적으로 굳게 지켜온 3대 신심, 성체성모순교자 신심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신 말씀으로 창조한 인류를 위해 당신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처럼(성체 신심), 이 절대적 사랑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하고 믿음으로 고백하며 당신 자신을 하느님 신비에 온전히 맡기며 순종하신 성모님처럼(성모 신심),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자신의 현세적 명예와 지위, 생명을 포기하며 하느님 사랑을 증거 하려 했던 순교자처럼(순교자 신심), 그리스도인은 섬김이라는 가시적 실천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기쁨과 희망을 선포하는 하느님의 사람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영적쇄신의 구체적인 실천방향으로는, 소공동체 활성화’,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가정성화’, ‘사회복음화를 제시하고 계십니다.

 

결국 교구설정 50주년을 맞으면서 교구장님이 하시고 싶으신 말씀은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관계를 다시 정립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혼인관계란 것이 양자 간의 자유로운 동의로 행해지는 계약의 관계인데, 우리가 이 계약을 너무나 많이 파기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희 성당도 내 후년이면 본당설립 50주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저희 본당도 교구장님의 사목교서의 정신을 따라 우리 신앙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 것에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만 알면 그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행위는 저절로 그 뒤를 따릅니다. 자신을 원숭이로 알면 원숭이로 행동할 것이고 사람으로 알면 사람처럼 행동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원숭이는 원숭이로부터 나오고 원숭이와 교제를 할 것이지만, 사람은 사람으로부터 나오고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정체성의 차이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가 나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 안에서 찾아내고 그 정체성을 세상 안에서 살아나가자고 하는 것이 이번 사목교서의 핵심인 것입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교회론을 가르칩니다. 에페소서 5장에 보면 남편은 아내를 위해 자기 자신을 바치는 머리로 비유되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는 몸으로 비유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두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 해 돈을 벌어다줍니다. 아내는 그런 남편을 위해 집안을 잘 돌보고 자녀들을 잘 키웁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 살과 피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 분의 희생으로 생명을 얻고 또 그 분의 뜻대로 사랑을 실천합니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듯이 그리스도와 교회, 즉 나와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사실 독생성자 그리스도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분과의 혼인으로 그 분과 한 몸이 되기 때문에 그 분의 아버지를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번 대희년 사목교서를 위한 해답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나의 정체성을 확고하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관계의 완성인 혼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혼인은 사람이 서로 좋아서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맺어주는 것이라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혼인은 관계의 완성입니다. 그러나 둘의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요즘 3쌍이 결혼하고, 1쌍이 이혼을 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이는 주교님께서 현 시대의 문제인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를 떠나고 있는 추세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이혼을 쉽게 해 버리는 것처럼 그저 힘들면 버려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혼인생활을 끝까지 이어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전에 한 중년이 된 부인이 남편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시집을 못 가고 있는 노처녀에게 이렇게 충고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결혼하지 마. 괴로운 것보다 외로운 게 나아!”

영국 시인 바이런은 이렇게 말합니다.

굉장한 적을 만났다. 아내다. 너 같은 적은 생전 처음이다.”

러시아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싸움터에 나갈 때에는 한 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리고 결혼을 할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

프랑스의 시인 브들레르는 이렇게 소리칩니다.

마누라가 죽었다. ... 나는 자유다.”

 

그런데 제가 전에 어떤 커피숍에서 본 것인데, 벽에 사랑은 둘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이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결혼은 서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나라를 바라보는 여정이 바로 지금의 우리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방글라데시 한 마을엔 일 년에 5달씩 강물이 불어서 고립되는 마을들이 있습니다. 생활용품은 배를 타고 와서 파는 사람들이 있어서 괜찮지만, 문제는 학교에 가야 하는 아이들입니다. 선생님이 아이들을 일일이 찾아다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수영을 하는 수밖에는 없는데 책과 교복 등을 가지고는 20분 넘게 수영을 해야 하는 것은 10살 이하의 아이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입니다.

그러나 그 마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책과 교복도 젖지 않고 또 편하게 강을 건너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바로 물에 뜨는 양은 냄비를 하나씩 주는 것입니다. 그 안에 책과 교복을 넣고 그것을 튜브처럼 잡고 발만 구르며 수영을 해서 강을 건넙니다. 귀찮다고 버리지만 않는다면 물살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냄비를 놓쳐 잃어버리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수영하기 위해 냄비는 하나의 짐입니다. 끊임없이 나의 수영을 괴롭힙니다. 그러나 힘들 때 그것이 없으면 잡고 버틸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내 책과 옷도 다 젖어버려 못쓰게 됩니다. 이것이 혼인과 같은 것 같습니다. 또 나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함께 있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없으면 결코 혼자서는 끝까지 갈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방글라데시 아이들처럼 그 냄비가 없다면 절대 학교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도 우리 신랑인 예수님과 함께가 아니면 절대 하늘나라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절대 아버지 나라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셨으니 내가 버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셨다면 나에게 꼭 필요하기 때문에 맺어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시 떠나보냈던 냄비를 다시 잡는 일, 그것이 회개입니다. 그 분과 하느님나라를 함께 바라보며 나아가는 것이 혼인생활입니다.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교입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셨으니 결코 내가 버리는 일이 없도록 합시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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