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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7 조회수625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0월 7일 연중 제27주일



Therefore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no human being must separate.
(Mk.10,9)


제1독서 창세기 2,18-24
제2독서 히브리 2,9-11
복음 마리코 10,2-16

저는 지난 추석 명절 연휴 기간 중에 산을 다녀왔습니다. 산에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에 가면 기분이 참 좋아집니다. 특히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을 거닐 때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쾌한 기분을 얻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왜 산에 가면 그런 마음이 들까요? 그와 반대로 자연 속이 아닌, 사람들이 많은 곳을 가게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픕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되면 그 자체로 쉽게 지치게 됩니다. 왜 산에서 느끼는 감정과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는 것일까요? 단순히 산에는 공기가 좋고,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공기가 나쁘기 때문일까요?

어떤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나무는 태어나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오직 끝없이 주기만 하다가 사라진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우리들이 나무가 있는 숲 안에 들어갈 때 좋은 감정을 갖게 되는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바로 나무는 준다는 생각조차 없이 계속해서 주기만 할 뿐이고, 더군다나 주었다고 해서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무를 가까이하면 편안하고 상쾌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반대로 사람들과 함께 하면 어떻습니까? 특히 어떤 물질적인 것들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받기만 하려고 하지요. 그래서 쉽게 지치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났느냐를 기억하면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자기가 아니라 남을 위한 사랑의 실천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어떤가요? 그들을 통해서는 오히려 괜히 힘이 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으며 욕심과 이기심을 끊임없이 보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괜히 힘이 빠지면서 그 자리를 도망가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나의 이웃들에게 어떤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었을까요? 혹시 내 곁을 빨리 떠나고 싶은 모습으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기보다는 힘을 빼앗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이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가정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가정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가정 안에서도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이 내가 알지 못하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이 바로 그런 배경인 것이지요.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율법을 이야기하면서 남편이 아내를 버릴 수 있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가정 안에서부터 진정한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하느님 나라 역시 완성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맺은 혼인이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사랑의 완성이 가정 안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을 바라보십시오. 우리 가정의 구성원들은 나로 인해 얼마나 힘을 얻고 있나요? 또한 우리 가정 안에서 사랑의 시작이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고 싶다는 말만 하지 마시고, 가정 안에서의 내 모습을 묵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우리를 상처 입히는 것은 산산조각 난 꽃병 자체가 아니라 꽃병이 깨져서는 안 된다는 집착이다(안젤름 그륀).


어제 도원체육관에서 노인의 날 행사가 있었습니다. 건강하세요~~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자 한다면...

유대인들에게 이런 교육방법이 있다고 하네요.

자녀가 어느 정도 자란 어느 날, 아빠가 보통 때처럼 놀아주다가 갑자기 아이를 내팽개친다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큰 충격을 받겠지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 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준답니다.

“얘야! 사람은 믿어주는 존재이지 믿고 의지하는 존재는 아니란다. 아빠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러므로 사람도 믿지 말고 아빠도 믿지 말고 오직 하느님만 믿고 평생 하느님만 꼭 붙잡고 살아야 한다.”

지금 내가 붙잡고 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의 삶을 지켜줄 것이라는 헛된 희망을 갖고 물질, 명예, 지위, 사람 등을 붙잡으면서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가 진정으로 붙잡으면서 살아야 할 분은 주님뿐입니다. 주님을 통해서만 행복한 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람은 잘 나서 주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잘 섬겼기 때문에 축복을 받는 것이다.

주님을 진정으로 잘 섬겨서 우리 모두 한 명도 제외 없이 주님의 큰 축복을 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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