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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7주일/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부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7 조회수369 추천수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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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복음. 9,30-37......원 근식 엮음

오늘의 묵상

마르10,2-12절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부부 사랑 안에 있는 부부


혼인미사 주례 때 저는 강론 끝에 꼭 이 같은 말을 합니다.

“태어날 땐 서로 다른 장소에서 태어났지만 이젠 같은 장소에 있을 것이며, 태어날 땐 다른 하늘을 보고 태어났지만 앞으론 같은 하늘을 보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땐 서로를 모르고 태어났지만 앞으로는 서로를 알아가게 될 것이며, 태어날 땐 다른 부모를 섬겼지만 이젠 한 부모를 섬기게 될 것이며, 이제껏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지만 앞으로는 두 발이 하나가 되어 하나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 첫 발걸음에 주님의 무한한 행복이 깃들길 기도드립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할 때 흔히 짐승만도 못하다는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실제로 동물의 세계에는 암컷과 수컷의 부부애가 사람의 경우를 뛰어넘는 예가 자주 목격된다고 합니다. 특별히 물총새가 그러합니다. 물총새는 대양을 횡단할 때에 반드시 암컷과 수컷이 한 쌍이 되어 비행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 비행을 하다가 암컷이 지치면 수컷이 암컷을 업고 비행하며 체력을 회복한 암컷이 다시 수컷을 업고 비행하기를 반복하며 목적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만물의 영장이라 일컫는 우리 인간이 짐승만도 못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에로의 비행은 부부중 어느 한편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인생의 짐을 서로가 함께 나누며 지고갈 때 사랑의 비행이 시작될 수 있고, 마지막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부부들을 볼 때 놀라게 되는 것은 얼굴이 너무나 닮았다는 것입니다. 한지붕 아래 한솥밥을 먹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성격을 맞추려다 보니 얼굴까지도 닮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라고 믿습니다. 우연히 만나 사랑을 하게 되고 결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분명 둘 사이에는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작용하여 서로가 만나게 되었고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것입니다. 결국 부부의 결합은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예수님께서도 이를 분명히 가르치고 계신것입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르10,7-9)

제 탓입니다

에덴 동산에 홀로 있던 아담이 여자인 하와의 탄생을 보며 이같이 부르짖었습니다. 이는 기쁨의 환호성이었습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창세 2,23)

그랬던 아담이 하느님께서 금하신 열매를 먹고 하느님의 추궁을 받자 자신의 탓을 고백하지 않고 하와에게 탓을 돌립니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고자질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정말 치사한 대답이 아닐 수 없습니다.원죄는 분명 인간이 감히 하느님과 같아지려고 하였던 교만함의 죄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원죄는 죄의 탓을 남에게 전가시킨 것에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 미사 안에서 고백의 기도 중에 가슴을 치며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를 반복하며 모든 잘못의 탓이 자신에게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면 언제나 남의 탓이라 핏대를 세워 불행히 살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남편 탓이요, 아내 탓이고, 자식들 탓이요, 시댁 처갓집 탓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삶이 지겨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쁨이 없는 삶을 사니 그토록 이혼율이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진정 잘못을 제 탓으로 돌리며 사는 가정은 행복합니다. 모든 잘못의 탓이 자기에게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고치려 노력합니다. 그럴 때 서로의 단점이 보이기보다는 장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서로를 진정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 히브리서의 저자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이나, 거룩하게 되는 사람들이나 모두 한 분에게서 나왔습니다. 그러한 까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히브 2,11)

우리는 모두 거룩하신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진정 죄 많은 우리 인간의 죄를 예수님께서는 탓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감싸 주십니다. 때문에 우리 또한 타인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서로 거룩한 존재로 여겨 주어야 합니다.

사랑은 남을 탓하지 않고 귀하게 여겨 주는 데에서 출발 합니다.

-배 광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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