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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9 조회수78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Martha, Martha,
you are anxious and worried about many things.
There is need of only onething.
Mary has chosen the better part.
(Lk.10,41-42)



제1독서 칼라티아 1,13-24
복음 루카 10,38-42

명절 때만 우리나라의 어머니들은 정말로 힘이 드십니다. 음식을 장만하고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부엌 밖을 나오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손아래 동서가 집에 와서는 부엌에 들어와 함께 일할 생각은 하지 않고 편찮으셔서 방에 누워 계신 시어머니와 이야기만 나누고 있다면 어떨까요? 편찮으신 시어머니와 함께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화가 날 것입니다. 더군다나 손아래 동서가 같이 일 좀 하자는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남편에게 또는 시어머니에게 자기를 좀 도우라고 말 좀 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시어머니는 오히려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랜만에 집에 와서 나랑 이야기하는 것이 어떠냐? 너희들 모두 일하느라 바쁘지 않니? 네 동서는 나랑 같이 있게 그냥 놔둬라.”

환장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시어머니가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을까 싶을 것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시어머니에 대한 원망이 가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손님맞이와 제사 준비를 하는 일이 어머니가 심심하지 않게 말벗이 되어 드리는 것보다 훨씬 큰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아프신 시어머니의 말벗을 해드린다는 것 역시 큰일인데 그보다는 육체적인 자신의 일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손아래 동서를 시기하고 미워하며 분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보람을 느끼고, 사랑하는 가족과 존경하는 조상님을 기억하면서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한다면 그 사실 자체로도 기쁨을 간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바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마르타와 마리아의 모습이기 때문에 비슷한 구성을 한 번 만들어 보았습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서 분주하게 일하는 마르타와는 달리, 예수님 발치에 앉아서 그가 하시는 말씀에 푹 빠져 있었던 마리아의 모습이 대조됩니다. 그래서 마르타가 예수님께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마르타의 편을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은근히 동생 마리아의 편을 들어주십니다.

집안일을 돕지 않는 동생이 칭찬을 받고 부지런한 언니가 칭찬은커녕 핀잔을 듣는 이 이야기는 참으로 부당하게 들립니다. 특히 부엌일과 관련해 신경이 예민해지기 쉬운 명절 때라면 더욱 그렇게 들리겠지요.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교회는 이야기합니다. 즉, 세상의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주님의 말씀을 잘 듣고 기도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자신에게 맡겨진 소명에 만족하고 기쁨을 얻기보다, 비교판단하면서 시기하고 미워하며 분노한다는 것입니다.

비교를 하는 순간 행복은 내게서 떠난다고 합니다. 비교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묵묵하게 최선을 다하는 삶이 필요한 오늘이 아닐까요?

 

사람이 생을 마감한 뒤 남는 것은 쌓아 온 공적이 아니라 ‘함께 나누었던 것’입니다(미우라 아야코).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을 방문하신 그리스도, 베르메르의 작품.



우리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

이 세상 안에 사랑의 힘을 무기력하게 하는 네 가지 도구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비판하기, 경멸하기, 변명하기, 발뺌하기’라고 하네요. 여러분은 자주 사용하는 도구는 이것 중에서 어떤 것입니까? 이 네 가지가 분명 사랑의 힘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이것을 버리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이 네 가지는 내가 남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는 도구인 동시에, 남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게 만드는 도구라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비판하고 경멸하고 변명하고 발뺌만 하는 사람을 누가 사랑하겠습니까?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기를 바라는 분은 이 네 가지 도구를 더욱 더 자주 사용하도록 하십시오. 그러나 나 역시 사랑을 받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면 내가 사용하고 있는 그 네 가지 도구를 과감하게 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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