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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마르타냐? 마리아냐?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9 조회수399 추천수1 반대(0) 신고
10년전 쯤 어느 주일 미사 때

신부님께서

오늘의 복음(마르타와 마리아)을 읽으시고 나서 신자분 들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 마르타가 마음에 드시는 분 손한번 들어보세요 ! "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마리아가 마음에 드시는 분 !! "

그 많은 신자들은 서로 쭈볏쭈뼛 눈치만 보다가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러자 신부님의 얼굴이 창백해 지시더니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 강론을 하지 않겠습니다.  기도합시다."

순간 신자들은 당황했고 나중에 신부님을 달래느라 엄청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미사 강론 시간에 신부님께  이런류의 질문을 받아 본 경험 많으실 것입니다.

순간 신자들의 팔은 천만근이 되어버리죠...

시중도 싫고 말씀을 듣는 것도 싫은게 우리 신자들의 입장이라면

신부님으로선 더 이상 마리아와 마르타 강론을 하실 필요를 못 느끼셨을 것입니다.

나중에 신부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아무도 반응하지 않은것을 보고 회의가 드셨다고 합

니다. .

신부님의 충격(?)요법이 통했던 것일까요?

이 사건 이후로 오늘 복음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묵상 해 보면,

마르타의 몫도 어느정도 인정해 주는 것이 마리아의 몫을 더 빛나게 해 줄것 같습니다

사실.. 마르타의 시중이 나쁜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마르타가 예수님께 마리아에 대하여 나쁘게 말한 것입니다.

마리아도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문제는 고생을 모두 언니에게 떠 넘긴 것입

니다.

예수님도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라고 말씀 하셨지 누가 옳다고 편을 들어주

신 것은 아닙니다.


'활동'이 나쁜게 아니라 '활동 주의'가 나쁜 것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위해 시중드는 거룩한 활동을 하지만

마르타가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요 . "

라는 자기위주의 말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르타의 시중은 겉으로 봐서는 예수님을 위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믿음의 실천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 즉, '율법주의' 였을 뿐입니다.

자기만이 옳다는 '자기주의'에 빠져있습니다.

말 한마디 잘못하여 자기의 노력이 헛수고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노력을 헛되게 만들지 않게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믿음의 실천. 즉 , 마리아처럼 먼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시중드는 수고를 언니에게 맡긴 마리아가 마르타 입장에선 좀 얄밉긴 하지만

마리아는 정작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마르타가 마음에 드십니까?

마리아가 마음에 드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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