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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기도는 방법이 아니라 행복한 만남이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09 조회수831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27주간 수요일


< 주님, 저희에게도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


  
복음: 루카 11,1-4






아기 예수를 경배하는 성모


벨리니(Bellni, Giovanni) 작, (1475), 피렌체 콘티니 보나코씨 콜렉션



     < 기도는 방법이 아니라 행복한 만남이다 >

종교적 구도를 하던 수도승이 있었습니다. 그가 산에 올랐다가 그만 길을 잃었는데, 사람이 살지 않을 듯한 깊은 산중에서 다행히 인가를 찾아 목숨을 부지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의 주인이 하는 기도를 듣고, 수도승은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졌습니다.

신이시여, 어제도 저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라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등이 가렵거나 허리가 아프시진 않은가요. 그럼 제가 등도 긁어드리고 허리도 만져드릴 수 있을 텐데. 혼자 하기는 힘들 일이잖아요. 혹은 발을 씻겨드리면 참 좋을 테구요....”

수도승은 그만 더 참지 못하고 기도를 멈추게 했습니다.

이봐요, 잠깐. 날 살려준 건 감사하지만... 신께서 등이 가렵거나 허리가 아프다고요? 대체 어떻게 그런 무례한 언사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정식으로 기도하는 자세와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이튿날 수도승은 그 집을 떠나왔습니다.

다행히 길을 찾아든 수도승이 산을 거의 내려온 찰나, 그는 신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대는 이제, 내게서 가장 가까운 이마저도 멀어지게 만들었구나!”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에서 수많은 기도들의 초대를 받습니다. 천주교의 기도 방법만 해도 수백 가지는 될 듯 싶습니다. 성령기도회에서는 통성기도나 방언기도가 좋다 말을 하고, 예수회에서는 성경 묵상기도 방법을 가르치고, 다른 수도회에서는 전통적인 렉시오 디비나 방법을 추천합니다. 그런가하면 레지오에서는 묵주기도가 가장 중요한 듯이 말하고, 요즘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나 향심기도 등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성체조배를 강조하는 편이지만 모든 기도방법을 존중합니다.

얼마 전에 한 신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자신들의 기도방법이 너무 좋다고 널리 전파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되풀이하며 청하는 방법인데 나쁘진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를 널리 전파할 생각도 없었습니다. 기도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위의 예화에서 수도승은 자신의 기도방식을 한 사람에게 알려주었는데 결국 그 기도방식이 한 사람을 주님과 떨어뜨려놓는 결과를 초래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속에 살고 있었던 사람은 나름대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인격적으로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기도의 방법에 치중하게 되면 그 인격적 만남을 방해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 할아버지가 하루에 한 번씩 성당에 나와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당에 들어갔다가는 바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신부님은 그 할아버지를 보면서 기도 참 짧게 하시네!’하며 의아해 하였습니다.

시간이 좀 흘러 그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신부님은 종부성사를 주러 병원에 갔습니다. 할아버지를 본 신부님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너무 행복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신부님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제가 기도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하루에 한 번씩 성당에 들어가, ‘예수님, 저 왔어유. 이젠 갈게유. 잘 계슈.’라고 기도 드렸는데, 지금은 제가 못 가니까 예수님이 하루에 한 번씩 저를 찾아와서 나 왔다. 이젠 갈게. 잘 있어라.’라고 말씀하시네요. 어떻게 기쁘지 않을 수 있겠슈?”

 

기도의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주십니다. 주님의 기도는 기도의 방법이 아닙니다. 기도의 내용입니다. 기도의 방법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주님의 기도에 나와 있는 대로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서 그 분께 영광을 드리고 내가 원하는 것을 청하라는 뜻입니다. 즉 기도는 방법보다는 인격적 만남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일 하느님을 열심히 부르며 기도하는 신부님께 어느 날 하느님이 그래, 나 여기 있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 때 그 소리를 듣고는 신부님이 그만 기절해 버렸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습니다. 하느님께 기도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인격적으로 그분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어떤 두 분의 의사 부부가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하여 첫 영성체를 하던 날 자매님이 하도 울기에 형제님이 그만 좀 울라고 하니까 그 자매님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성경말씀만으로 나에게 오시는 줄 알았는데, 이제 성체를 통해 직접 내 안에 들어오시는데 어떻게 감격스럽지 않고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있겠어요. 제가 이상한건지 그냥 받아 모시고는 자리에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게 노래 부르고 있는 다른 신자들이 이상한 건지 모르겠어요.”

과연 우리는 그 분을 만나고 있는 것일까요? 그 분을 직접 만나도 흥분되고 기쁘고 감사해서 눈물이 나지 않을까요? 사실 그리스도와 가장 완전하게 만나는 기도시간은 미사시간입니다. 이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되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행복은 이 만남의 연속입니다. 기도나 전례 안에서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고 참으로 행복하지 못하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의 형식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애인을 만나러 나가는데 해야 할 말을 일일이 다 적어서 나가는 사람이 있습니까? 말을 해도 되고 그냥 어깨에 기대어 자도 됩니다. 함께 있다는 행복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도 기도의 방법에 구애받지 말고 기도시간이 우리 삶의 가장 행복하고 기다려지는 내 사랑과의 만남의 시간이 되게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목요일은 성시간을 하는 관계로 복음묵상을 건너뛰도록 하겠습니다.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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