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동산의 꽃과 풀들] ‘성모님의 황금’ 해바라기, ‘묵주알’ 칸나 해바라기의 또 다른 이름 ‘성모님의 황금’ 그리스 신화에 사랑을 이루지 못한 요정이 꽃이 된 이야기가 나온다. 먼 옛날, 클리티에라는 요정이 태양의 신 아폴론을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클리티에는 요정들 중에서는 아름다운 축에 속했지만, 아폴론의 눈길을 사로잡지는 못했다. 클리티에는 아폴론이 자기의 마음을 알아주기만을 기다렸다. 하릴없이 9년 넘게 흠모하던 클리티에는 해바라기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태양을 따라 동쪽에서 서쪽으로 돌면서 사랑하는 이의 곁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클리티에는 아폴론이 언젠가는 반드시 찬란하게 빛나는 마차를 타고 자기에게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다린다고 신화는 전한다. 이렇듯 태양을 사모하여 해 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태양을 따라 움직인다고 전해지는 식물인 해바라기는 중앙아메리카 원산으로 2m 내외로 훤칠하게 자라는 국화과의 한해살이풀이다. 8∼9월이면 지름 8∼60cm의 큼지막한 노란색 꽃을 피우고, 이어서 20∼30%의 기름을 함유하는 씨앗을 맺는다. 인류는 일찍부터 관상용으로, 그리고 중앙아메리카(기원전 3000~1000년경), 러시아, 유럽의 중부와 동부, 인도, 페루, 중국 북부에서는 씨앗을 거두어 먹고 기름을 짜기 위해, 또한 줄기의 속을 이뇨, 진해, 지혈에 유용한 약재로 이용하기 위해 해바라기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뒤에 해바라기는 유럽에도 알려지고 전해졌다. 그리고 이내 독특한 아름다움과 식품 자원으로서 유용성 때문에 높이 평가되었다. 유럽 사람들은 밝게 빛나는 태양을 닮은 생김새와 색깔을 보고 이 식물을 ‘태양의 꽃’(Sunflower) 또는 ‘황금꽃’이라 이름 지어 불렀다. 그리고 이 꽃에서 그 이름에 걸맞은 따뜻함, 긍정성, 권능, 힘, 행복이라는 상징성을 읽어냈다. 한편 해바라기는 식물학상 한해살이풀로 분류되는데, 실제로는 2년 이상 사는 다년생 품종도 있다고 한다. 게다가 다른 식물들에 비해서 회복력이 강한 편에 속한다. 그런 해바라기를 보면서 사람들은 장수(長壽), 내구력(耐久力), 시련을 견뎌내고 극복하려는 강한 의지 등을 생각했다. 이를테면 삶에서 난관을 이겨내고 그것을 긍정적이고 활력 있는 것으로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희망과 즐거움 넘치는 상징성을 해바라기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해바라기는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태양을 따라가지 않는다. 물론 해바라기의 싹과 잎은 햇빛을 향하는 성질이 있지만, 일단 꽃이 피고 나면 더는 빛을 따라가지 않으며, 다만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을 향해 고정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따라 돈다고 생각한다. 비록 태양이 구름에 가려져 있을 때라도 해바라기는 태양을 따라간다고 생각한다. 중세 그리스도인들의 생각도 그러했다. 그러한 생각에 이어서 순수한 기쁨과 긍정적인 분위기,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조건 없는 사랑의 상징성을 읽어냈다. 나아가, 그러한 방식으로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법을 배웠다. 삶이 힘들고 그래서 하느님이 그 고달픈 삶에 함께하지 않으시는 듯이 여겨졌을 때도, 하느님은 그 삶에 함께 현존하신다는 믿음의 메시지를 받았다. 하느님은 마치 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과도 같이, 인간이 시련과 난관을 극복하고 그 너머에 있는 밝은 삶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어김없이 보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위안을 받았다. 해바라기의 꽃이 태양을 닮은 것처럼, 인간은 애초에 하느님을 닮은 존재다. 그분이 인간을 당신의 모습대로 지으셨기에 말이다. 그러니 더욱 더 하느님을 닮아가는 것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곧 인간의 운명이고 과제다. 인간은 그런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특히 사랑받지 못하는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에게 다가가도록 운명 지어진 피조물들이다. 그런 마음이었기에 중세의 그리스도인들은 해바라기를 ‘성모 마리아의 황금’(Mary’s Gold, 또는 ‘성모님의 고결함’)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묵주알’이라 불린 칸나 여름부터 가을까지 시골집 담장 너머로 커다란 짙은 녹색 잎에 빨간색 꽃이 넘겨다보이는 풍경으로 제법 친숙한 꽃, 칸나. 우리말로는 홍초라고도 하는데, 현재 칸나라고 불리는 것은 아시아, 아프리카, 남아메리카의 열대 지방에 자생하는 원종들에서 개량된 원예종이다. 그러한 개량종이 100품종 이상이나 된다. 칸나의 개량은 19세기에 유럽에서 시작되었는데, 크게 프랑스 칸나 계통과 이탈리아 칸나 계통으로 구분된다. 오늘날에는 이탈리아에서 개량된 품종보다는 프랑스에서 개량된 품종이 원예용으로 주로 재배된다. 칸나의 뿌리는 고구마처럼 굵고, 줄기는 곧은 원기둥 모양으로 2m까지 자라며, 잎은 양끝이 좁고 가운데가 넓은 타원 모양이고 그 밑부분(잎집)으로 줄기를 감싼다. 꽃은 빨간색 외에 보라색, 노란색, 주황색, 분홍색, 흰색으로도 피며, 지름 10cm 안팎 크기의 꽃이 지고나면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검은색 씨앗이 맺힌다. 개화기간(6월부터 서리가 내릴 때까지)이 길고 가뭄과 병충해, 공해에 강해서 가정뿐 아니라 도로, 공원 등에서 널리 재배된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석가모니의 사촌 형제로서 제자였다가 배신한 데바닷타가 석가모니를 죽이려고 절벽에서 바위를 굴려 떨어뜨렸다고 한다. 그러나 바위에 깔려 죽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석가모니는 고작 발만 다쳤다. 그때 발에 난 상처에서 피가 흘렀는데, 그 피에서 꽃이 피어났다고 한다. 그 꽃이 바로 칸나다. - 칸나 씨로 만든 묵주. 칸나의 씨앗은 동글동글할 뿐 아니라 물에 가라앉을 정도로 야물고 단단하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에 인도 사람들이 영국의 식민 통치에 맞서 대대적인 저항 운동을 벌였을 때(세포이 항쟁), 실탄이 떨어진 인도 병사들은 칸나 씨앗을 총알 대신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후로 영국에서는 칸나를 ‘인도인들의 총알’(Indian Shot)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칸나의 씨앗은 또한 음악을 연주할 때 달그락거리는 반주음을 내는 도구로도 쓰였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도인들과 이슬람교도들은 칸나 씨앗으로 염경기도를 바칠 때 쓰는 도구(묵주)를 만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중세기 유럽의 가톨릭 신자들은 동글동글하고 단단한 씨앗을 맺는 식물인 칸나를 아예 ‘묵주알’(Rosary beads)이라고 이름 지어 불렀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8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