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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12 조회수72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0월 12일 연중 제27주간 금요일



If it is by the finger of God that I drive out demons,
then the Kingdom of God has come upon you.
(Lk.15,20)


제1독서 칼라티아 3,7-14
복음 루카 11,15-26

오늘날 유혹의 말은 참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이런 것이 아닐까요?

“형식이 중요해? 아니면 마음이 중요해? 당연히 마음이 중요하다면 굳이 형식을 따져서 주일마다 성당에 가야 하는 이유는 뭐야? 마음만 있으면 되지.”

“고해성사. 이것 역시 형식적인 것 아냐? 내가 진실한 마음으로 뉘우치고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면 되지. 신부도 사람인데 불편하게 왜 고해소에 들어가서 고해성사를 봐야 하는 거야?”

“도저히 바빠서 성당에 갈 시간이 없다고. 신앙생활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먹고 살아야지.”

이런 말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는 말이기 때문이지요. 형식과 마음의 문제. 분명히 마음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없기 때문에 형식이 중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평가절하 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만약 마음이 있다면, 그에 대한 형식 역시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바쁘다는 사람들도 자신의 취미 활동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시간이 씁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한 시간은 왜 이렇게 아깝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바로 마귀의 유혹들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의 홍수 속에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유혹을 이겨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내 자신을 더욱 더 높여 주고 내 자신의 합리화를 도와주는, 우리가 자주 빠질 수밖에 없는 유혹들이기 때문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군중 가운 데 몇 사람이 예수님을 지목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자신은 물론이고,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놀라운 기적의 힘을 예수님을 통해 보면서 그들은 이렇게 말했던 것이지요. 하느님의 힘으로 기적을 행한다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베엘제불의 편이라면서 기적 모두가 마귀를 통해서 나오는 잘못된 것이라는 거죠.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아주 간단하게 그들의 의문 자체가 엉터리임을 지적하십니다. 사탄이 사탄을 내쫓는다는 논리는 억지 이론이라는 것이지요. 즉, 사탄의 적대자는 하느님인데, 사탄이 어떻게 악과 싸우겠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엘제불 편이라는 생각을 한 것 역시 마귀의 유혹인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님보다 더 높아지려는 유혹, 그래서 자신에게 기적의 힘이 없음을 합리화시키는 유혹인 것입니다. 그 결과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분의 사랑 역시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이 마귀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특히 남들을 평가하는 가운데에서 그리고 자기 자신을 높이고 합리화시키려는 마음을 버리지 못해서 계속해서 마귀의 유혹에 넘어갑니다. 따라서 그러한 유혹을 물리치는 우리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계속해서 매달려야 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마음으로……

 

가족의 사랑은 절망의 예방약이며, 삶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게 해 주는 예방 주사다(에드워드 할로웰).


 
인천주교좌성당의 제대쪽. 신앙의 해 개막미사 직전에 찍어봤습니다.



내면의 목소리를 듣자.

운동을 할 때 종종 이어폰을 귀에 꽂아 음악을 듣습니다. 운동을 할 때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또 심심하기도 하거든요. 그날도 음악을 들으면서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는 것입니다. 저는 볼륨을 좀 더 키워서 음악을 감상하며 운동을 했지요. 바로 그 순간 교구청의 어떤 신부가 저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저는 잘 들리지 않아서 “왜?”라고 물었지요. 저의 이 소리에 그 신부님은 깜짝 놀라더군요.

저는 얼른 이어폰을 귀에서 뽑아서 다시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냥 인사했을 뿐인데, 너무 큰소리로 “왜?”라고 답해서 놀랐다는 말을 합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크게 듣고 있는 사람이 말할 때는 저절로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내는 소리가 들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즉, 자신이 하고 있는 말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에 크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자기 내면의 소리를 잘 들을 수 없으면 남에게 내는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남에게 큰 소리를 내는 사람을 잘 생각해보십시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때 굳이 소리를 치지 않아도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해주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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