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아직 남아있다]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14 조회수472 추천수0 반대(0) 신고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

부자는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묻습니다.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을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부르면서 무슨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지 이 말에서 부자의 근본적인 생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늘 날에도 윤리적으로 선한 행동을 하면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다 하고 생각하는 분들이 대단히 많이 있습니다. 분명히 선한 행실에 따른 그 보상은 있기 마련입니다. 부자는 율법에 근거하여 선한 일을 꾸준하게 실천해 온 사람으로 틀림없이 보여집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그에게 올바른 가르침을 한가지 더 더하여 주셨습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하고 일러주십니다. 그러나 부자는 <모든 것을 버린 참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부자는 선한 행실로 그 보상에 따라 '복'을 받았기 때문에 부자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그래서 '영원한 생명'까지도 선한 행실에 의해서 받을 수 있다며 확신하고서는 자신의 선한 행실에 견주어 예수님과 동일시하려고 '선하신 스승님' 하는 그런 호칭을 사용한 것입니다.

부자들은 모든 것을 가지려는 '소유 욕망'이 강합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고 하면 부자들의 소유 욕망은 주님의 말씀을 실행하지 못하게 합니다.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싶었던 부자는 예수님의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부자가 되어 있는 현세적인 삶이 더 좋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행실로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으로 가르치신 바가 없습니다. 먼저 예수님 자신부터 당신 스스로 '가난한 사람'이 되시고 '가난한 이들과 보잘것 없는 이들'을 자신과 동일시 하시며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실행하셨습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하느님에게서 오는"(1요한) '하느님의 사랑'이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소유욕망에 찌들리며 살면서도 '하느님의 사랑'을 오해하며 자기 욕심에 끼워 맞추려고만 합니다. 정말 이 부자처럼 소유 욕망의 자애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만 선한 행실을 주장하면서 부끄럽게 살아갑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이시지만 '이 사랑'을 마치 자신의 '면죄부'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시는 주님의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부분도 재물에 묶여 있는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을 실천하라는 의미이다 할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는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그것으로도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데 전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은 흔히 '자기 버림'으로 명명하는데 '자기 버림'이 예수님 말씀의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자기 버림'이 하느님의 뜻(마음), 그리스도 신앙의 목적이 아닌 것입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루카)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는 것은 자기 버림의 "제 십자가를 지고"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하신 말씀은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말씀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자기 십자가의 길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길'임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자기 선행의 길이 아니라 그리스도 십자가 고난의 좁은 길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냐며 물어 볼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불순종>에 가두어지기 때문이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의
예수님을 따름으로해서 더 좋은 하늘의 보물을 차지하게 된다는 희망의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