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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떠나는 사람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진실 -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사이좋은 시간'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19 조회수356 추천수2 반대(0) 신고
찬미예수님!

 



떠나는 사람이 가르쳐 주는 삶의 진실
스즈키 히데코 지음 / 심교준 옮김

5. 죽음의 순간, 즐거운 추억을 이야기하자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의 '사이좋은 시간'

"내 조카딸을 꼭 만나주세요." 잘 아는 M씨의 부탁으로 그와 함께 S씨가 입원한 병원을 찾은 것은 그해 이른 봄입니다. 50세인 그녀는 말기 암이었습니다. 지난 해 여름 간암이 발견되 었는데 이미 임파선에도 전이되어 손을 쓰기에 늦은 상태였습니 다. 집에서 요양하고 있던 그녀는 결국 상태가 악화되어 2월에 입 원했습니다. 병실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정신이 흐려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얘야!" M씨가 속삭이듯 낮은 목소리로 부르자, 그녀는 눈을 떴습니다. 그가 나를 소개하자 그녀는 온화한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병으로 수척해지기는 했지만 깨끗한 눈을 가진 기품 있는 여성이었지요. "어떠세요?" 내가 침대 곁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자,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았습니다. "오늘은 조금 기분이 좋은데요."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나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는 의사를 밝 혔습니다. 나는 바로 중요한 화제로 들어갔습니다. "뭔가 말하고 싶은 게 있으신가요?" "남편 일이에요." "아, 바깥어른과 두 분만이 사셨지요?" M씨로부터 그들에게 자녀가 없다는 등 어느 정도의 사정은 미 리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큰 일이 아니에요." 그녀가 이렇게 얘기를 시작했을 때, M씨는 내 뒤에서 "휴우" 하 고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녀에게는 말기 암으로 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이미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알 수 있었습 니다. "그래서 남편을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그녀의 목소리는 가냘프면서도 강한 어조였습니다. "남편에게 나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부탁하는 것은 무리한 주문이겠지만, 자신을 책망하면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저는 죽 을 수가 없어요---." 그녀의 남편은 대기업 간부였습니다. 일에 대해 정열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그녀를 회복시키기 위해 전심저력하고 있었습니다. 의 사가 "이제 어떤 조치를 해도 가망이 없어요" 라고 해도 그녀를 회 복시키려는 일념에 가득차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인데도 큰 병원 으로 옮겨서 수술을 받게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 과 죽음을 전제로 이야기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들으려고 하지 않아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긴 이야기에 조금 피로한 듯했습니다. "이제 잠깐 눈을 붙이세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도록 노력해 보자구요" 하고 말을 건네자, 그녀는 안심한 듯 조용히 눈을 감더 니 곧 잠이 들었습니다. 이틀 후인 토요일 아침, 다시 M시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 조카사위가 시간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와 줄 수 있으세 요?" 나는 급히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의사가 오늘밤이 고비라고 하네요." M씨가 속삭였습니다. "그래요. 바깥어른은 어디 계시지요?" M씨가 병실로 들어가면서 따라오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병실에는 S씨의 남편이 침대에 바짝 붙어 서 있었습니다. 그는 M씨에게 작은 목소리지만 위압적으로 말을 했습니다. S씨 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 것 같았습니다. 그의 남편은 내 존재를 아직 의식하지 못한 듯했습니다. "이보게!" M씨가 부르자 남편 Y씨가 고개를 돌렸습니다. "스즈키 선생님이 문병을 와 주셨네." "아,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습니다. 과연 대기업 간부답게 당당함 과 자신감이 넘치는 강인한 인상이었습니다. M씨가 그에게 손짓을 하자, 그는 부인을 잠깐 살펴본 다음 우리 뒤를 따라 병실을 나왔습니다. "걱정이 많으시지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얼른 생각이 나지 않아 우선 이렇게 입을 뗐습니다. "아뇨. 아내가 마음을 약하게 먹고 있어서---." 그는 이렇게 말하며 다소 가라앉은 표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부인의 소망을 대신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꺼내자 그는 조금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 런 모습을 보고 있는 M씨도 긴장된 표정이었지요. "부인께서는 이미 천국에 갈 준비가 되셨습니다. 단지 남편께서 자신의 죽음을 너무 애통해하지 말아 주기를 기도하고 있답니다. 특히 스스로를 지나치게 책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살려는 의지는 없다는 말인가요?" "본인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훨씬 전부터 알고 계셨 어요." 그는 내게서 눈을 떼었습니다. "남편의 격려와 위안을 받으면서 너무 고마워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하고 그 뜻에 맞추려고 애써 오신 거예요." 그는 괴로운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습니다. "부인은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 말씀을 나누고 싶어해요. 그런 다 음 제대로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가능하면 남편께서 애통해하지 말아 달라고---." 그의 표정이 더욱더 일그러졌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 테지요. 이런 단계에 이르러서도 아내의 죽음을 받아들 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 지요. 그에게는 못할 짓이었지만 나는 S씨의 소망을 제대로 전하 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어떠세요? 부인께서 마음 편하게 떠나도록 허락해 주세요. 그 리고 절대 자신을 책망하지 않겠다고 부인께 약속해 주시기 바랍 니다." 그는 하늘을 우러러보듯 얼굴을 들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늘 바빠서 아내에게는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요. 고생만 시 키고---."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것이 후회와 미련으로 남 아 마음이 아프겠지요.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나는 그가 우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금 느 끼는 괴로움이나 쓰라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해주실 것을 기도했습니다. 흐느껴 우는 그를 지켜본 몇 분은 한없이 긴 시간이었습니다. 그 는 퉁퉁 부은 눈을 내게 돌렸습니다. "알겠습니다.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시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성큼성큼 부인의 머리맡으로 다가가 눈을 감고 있는 부인 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의 뒷모습에는 어쩔 수 없이 결심하지 않 으면 안 될 때의 갈등이 번져나고 있었습니다. S씨의 잠자는 얼굴 은 마치 순진무구한 소녀 같았습니다. 잠시 후, 그는 문 앞에 서 있는 내게로 몸을 돌렸습니다. "스즈키 선생님, 감사합니다." 그때까지 고뇌에 차 있던 그의 표정이 이제는 산뜻하게 정리된 듯했습니다. 그는 이 순간에 부인의 죽음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나는 그의 용기 있는 결단에 경의를 표하면서 침대 곁으로 가 의 자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가슴 위에 포개져 있는 S씨의 손 위에 내 손을 가볍게 얹었습니다. "S씨!" 그러자 눈썹이 움찔하며 맞닿은 손에 미약하나마 힘이 느껴졌습 니다.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나는 그녀의 가쁜 호흡에 내 호흡을 맞추었습 니다. "바깥어른도 당신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계십니다." 고요한 병실에는 의료 장비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려왔습니다. Y 씨와 M씨의 호흡도 나와 S씨의 리듬에 맞추어졌습니다. 마치 S씨 에게 성원을 보내듯 병실의 모든 에너지는 서로 기분좋게 조화를 이루기 시작한 것입니다. "S씨, 이제 바깥어른께서 당신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실 거예요." Y씨는 부인의 손을 잡았습니다. 잠자고 있는 듯 보였지만 그녀 의 의식은 선명했습니다. "용서해 줘요, 여보. 일에만 매달려 있느라 당신을 혼자 놔두 고---." Y씨는 눈물을 흘리면서 같은 말을 거듭했습니다. 어렴풋이 부인 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러자 더이상 할 말을 찾지 못했는지 그저 하염없이 부인의 이름만 불렀습니다. "사랑하고 있다고 말씀하세요." 나는 Y씨에게 귀뜸했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조금 주저하면서도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저도요---." 엷게 미소를 지으며 부인은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해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서---." 부인의 응답에 더 참을 수 없게 된 Y씨가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으로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좀 더 잘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렇게 계속 용서를 비는 남편에게 부인은 "그렇지 않아요" 하는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다시 태어나--- 그때도 나와 함께 해줄 거예요?" 그는 마치 중대한 고백을 하듯 그렇게 물었습니다. "물론이죠. 기뻐요 ---." 부인은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래요. 고마워요." Y씨는 정말로 안도한 듯 고마움을 나타냈습니다. "저도 고마워요." 나는 그때 심리학자 융의 말을 떠올렸습니다. '인생에서 부부는 두 번 결혼식을 올린다. 처음은 사회적인 결혼 식으로 현실적으로 부부가 되는 날이다. 다음은 자녀들을 다 키워 놓고 죽음을 맞기까지 그 사이에 부부만이 아는 그런 결혼식이 있 다. 그것은 여러 가지 형태를 취하므로 외부에서는 알기 어렵다. 곤경에 처했을 때, 병으로 쓰러졌을 때, 늙었음을 절실히 느낄 때 등, 이제부터 인생을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려는 새로운 각오를 하 고 유대감이 깊어지는 기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런 기회에 부부 가 새삼스럽게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며 은총 속에 살기 시작한다 면 그들의 인생은 풍요로워진다.' 이 부부는 지금 두번째 결혼식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Y씨는 용서받고 치유된 마음으로 미련 없이 부인에게 '떠남' 을 허락했습니다. 그것은 부인이 바라던 바로 그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의식이 있고 난 다음날, S씨는 정말로 평안 속에서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주님의 평화가 항시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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