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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23 조회수746 추천수15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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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화요일-루카 12장 35-38절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참 깨어남>

 

 

    언젠가 외출 나갔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의 일이었습니다. 현관 입구에는 조그만 사무실이 하나 있는데, 문지기 수사님이 꼬박꼬박 졸고 있었습니다. 살그머니 사무실로 들어갔는데도 세상모르게 자고 있었습니다. 그 수사님 손에는 책이 한권 들려있었는데, 그 책 제목을 보고는 뒤로 넘어질 뻔 했습니다.

 

    “깨어나십시오!”

 

    참으로 깨어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눈을 크게 떴다고, 멀쩡한 얼굴로 돌아다닌다고 다 깨어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정한 깨어있음은 나 자신이란 존재가 더 충만하고 더 역동적으로 살아가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 참 깨어있음이 아닐까요? 이웃의 필요성에 기꺼이 응답하기 위해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이 참 깨어있는 것이 아닐까요?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하느님 음성,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식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참 깨어있음이 아닐까요?

 

    한 며칠 귀한 분들 모시느라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습니다. 혹시라도 귀한 분들게 결례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라도 각본이 흐트러지는 것은 아닌지? 혹시라고 누군가가 스케줄 펑크 내는 것은 아닌지? 귀한 분이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 피곤한데 몰아붙이는 것은 아닌지? 매 순간 귀한 분들의 안색을 살피고, 그분들의 스케줄을 점검해나갔습니다. 결국 그분들을 향해 늘 깨어있었습니다.

 

    돌아보니 피곤한 일이었지만 깨어있다는 것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었습니다. 상대방을 기분 좋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상대방을 살리는 일이었고, 상대방에게 내 사랑을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눈을 뜨고, 거리를 걸어 다니며, 물리적으로 깨어있지만, 사실 눈을 감고 있는 경우, 깨어있지 못한 경우가 허다합니다.

 

    한 구도자가 큰마음을 먹고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초반기에는 의도적으로 ‘사회물’을 빼기 위해, 환골탈태시키기 위해 팍팍한 일정을 던져줍니다. 이른 기상 시간, 오랜 기도시간, 강도 높은 작업시간, 별로 먹잘 것 없는 초라한 식탁...

 

    적응하기 힘들었던 그 구도자는 그 생활이 얼마나 팍팍하던지 마치 육군 훈련소 그 이상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혹독한 수련기를 보내고 있던 그 구도자에게 어느 날 섬광 같은 한 특별한 느낌이 다가왔습니다. 그토록 갈구했었지만 얻지 못했던 뜻밖의 하느님 현존 체험이 그에게 생생하게 다가온 것입니다.

 

    그 체험이후 육군훈련소는 순식간에 지상천국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정으로 깨어나고자 몸부림쳤던 구도자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참으로 깨어날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은 얼마나 큰 것인지 모릅니다. 그토록 우리를 괴롭히던 고통이 순식간에 은총으로 바뀝니다. 진정으로 깨어있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고통이 다가오더라도 별 문제 없습니다. 그 고통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게 해줍니다. 고통은 우리는 아직 불완전한 존재, 아직 하느님 아버지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순례자임을 깨닫게 해줍니다.

 

    참 깨어남을 통한 매일의 축복, 매일의 기적을 깊이 체험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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