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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25 조회수955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0월 25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I have come to set the earth on fire.
(Lk.12,49)


제1독서 에페소 3,14-21
복음 루카 12,49-53

공지사항 하나를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월요일까지 자리를 비울 일이 생겼습니다. 26일부터 28일까지 호주 한인공동체 피정 강의를 하게 되었거든요. 솔직히 조금 빡빡한 일정입니다. 오늘 오전에 강의를 하고나서 저녁 비행기로 호주로 떠납니다. 그리고 26일에 호주에 도착한 뒤에 오후에 첫 번째 강의를 시작으로, 이렇게 27일과 28일 강의를 하고 29일 아침 비행기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입니다.

호주. 말로만 들어봤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입니다. 더군다나 여행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조금 오랜 시간을 두고서 다녀오고 싶은 곳입니다. 그런데 계속되는 일정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강의만 하고서 곧바로 다시 돌아와야 할 수밖에 없더군요. 아무튼 놀러 가는 것 아니니까요.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오늘의 새벽 묵상 글을 시작합니다.

제가 있는 교구청에는 닭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신부님이 계십니다. 혼자서 치킨 한 마리를 거뜬하게 해치울 정도로 닭을 좋아하시지요. 그런데 이 신부님께서 꼭 배달을 시키는 치킨 집이 있습니다. 다 똑같다고 생각되는데 그렇지가 않다고 하더군요. 즉, 닭을 튀기는데 있어서 얼마나 좋은 기름을 사용하느냐, 또 좋은 닭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맛이 크게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다고 하지요. 값싼 중국산 닭보다는 우리나라 닭이 훨씬 맛있으며, 튀기는 기름을 자주 갈아주어야 바삭하고 맛있는 치킨을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솔직히 중국산 닭을 사용한다면 그리고 튀기는 기름을 바꾸지 않고 그냥 계속 사용한다면 주인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인 이득을 얻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집은 사람들이 찾아가지 않지요. 그래서 오히려 경제적인 이득이 없어 보이지만 최고의 맛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면 사람들이 더 잘 찾아 가기에 경제적인 이득도 저절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순간의 이득이 영원한 이득을 가져오지 않습니다. 순간의 이득은 순간에만 머물 뿐입니다. 어쩌면 주님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많은 이들이 지금 한 순간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순간의 이득만을 주님께 청합니다. 그러나 이는 곧 잊혀질 것이며, 후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주님께 영원한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을 청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의 말씀이 세상 사람들이 바라고 있는 ‘순간의 이득’과는 다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분열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고 하시지요.

이러한 분열을 가져오더라도 우리는 영원한 이득을 주는 영원한 생명을 쫓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함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십니다. 그것도 과감하게 현실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을 끊으면서 말이지요. 지금 내가 끊어야 할 것은 무엇이고, 또 내가 쫓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묵상해 보시길 바랍니다.

 

나의 가치는 다른 사람에 의해 검증될 수 없다. 내가 소중한 이유는 내가 그렇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의 가치를 구하면, 그것은 그의 가치일 뿐이다(웨인 다이어).



답동성당 옆에 핀 예쁜 꽃.



 
 
나의 기준을 낮춰라

시인 윌리엄 스태퍼드는 50년 동안 약 22,000편의 시를 썼다고 합니다. 정말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루는 젊은 시인이 물었지요.

“저는 몇 주 동안 온 힘을 쏟아 시 한 편을 완성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어떻게 그 많은 시를 쓰셨죠?”

이 질문에 스태퍼드는 대답했습니다.

“자네의 기준을 낮추게나.”

정말로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의 기준을 낮추기 때문에 시 한 편을 완성하는데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완벽한 시 한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신의 기준을 낮추지 못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남의 눈치를 바라보면서 부끄러워하고 소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런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저 역시 인터넷에 2001년부터 써왔으니 글을 써 온지가 벌써 10년이 훨씬 넘었습니다. 솔직히 스스로 글을 잘 못쓴다고 생각했기에 글을 올리는 것이 처음에는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꾸준히 쓰다 보니 글 쓰는 실력도 조금씩 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네요. 중요한 것은 나의 기준을 낮추고 꾸준하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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