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8 연중 제30주일 예레31,7-9 히브5,1-6 마르10,46ㄴ-52

생명의 길

분도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베네딕도 수도 규칙 해설과 묵상’ 내용의 책 제목

‘생명의 길’이란 글자를 보는 순간,

강론 제목은 ‘생명의 길’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오늘 미사의 축소판 같은 복음이

갈망과 관상, 선교라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생명의 길을

환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기뻐하며 주님의 집에 가리라”

며칠 전 어느 수녀님이 피정을 신청하며 보낸 메일의 서두 말마디가

통상 사용하는 ‘+찬미 예수님!’이란 말마디보다

신선하고 이색적이었습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그리운 하느님을 찾아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집인 수도원을 찾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갈망의 믿음 있어 관상과 선교입니다.

10월 달 독일에서 있었던 베네딕도 오틸리엔 연합회 2차 총회에서

저희 요셉수도원이 자치 수도원의 승격이 결정되기 전

진지한 논의 과정에서 저는 날카로운 두 질문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 강론 에도 인용했지만

저에겐 너무나 강렬한 체험이었기에 또 나눕니다.

“요셉수도원의 영성은 관상적이라 선교를 지향하는

오틸리엔 연합회엔 웬 지 맞지 않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요셉수도원 관상을 지향하는 것 같은 데 과연 선교의 분위기 팽배한

오틸리엔 연합회 안에 몸담고 있을 때 과연 편안할 수 있겠느냐?”

는 요지의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었습니다.

사실 여기 요셉 수도원을 찾았던 대부분 사람들의 느낌도

강렬한 관상수도원의 분위기였던 듯 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얼떨결에 나온 짧은 대답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정리되었습니다.


순전히 성령의 도움이라 믿습니다.

“I think that Contemplation and Mission is One

(나는 관상과 선교는 하나라고 생각한다).”

부연 설명을 할 것도 없이 환호와 더불어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대답하고 보니 진리를 말했습니다.

관상과 선교는 함께 갑니다.

관상 없는 선교는 공허하고 선교 없는 관상은 맹목입니다.

좋은 관상가는 좋은 선교사일 수뿐이 없습니다.

이어 ‘그날의 글귀’로 선정된 자립청원서 중 다음 대목입니다.

“Our missionary field is

not outside the monastery but the monastery itself

where we invite guests and take care of them(우리 선교의 장은 수도

원 밖이 아니라 손님들을 맞이하고 돌보는 수도원 자체이다).”

그대로 여기 요셉수도원뿐 아니라 모든 정주의 분도수도원을 지칭합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찾아오는 하느님의 집인 수도원 자체가

선교의 장이자 관상과 선교의 일치를 상징합니다.

밖에 나가 선교하는 게 아닌 초대를 통한 선교입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에 이어 주님과 만남의 관상, 주님을 따르는 선교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티매오의 아들 바르티매오를 통해 환히 드러나는

생명의 길입니다.

주님을 찾으십시오.

오늘 복음의 ‘길가에 앉아있는 눈 먼 거지 바르티매오’는

바로 고독하고 외로운, 그러나 주님을 찾는 갈망의 인간 실존을 상징합니다.

주님을 찾는 갈망이 우선입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당신을 찾는 갈망의 믿음이 있을 때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자기도 약점을 짊어지고 있으므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을 너그러이 대해 주시는

대사제 주 그리스도님이십니다.

우리가 찾는 분은 다른 누구도 아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신 분,

‘너는 멜키체덱과 같이 영원한 사제다.’라 칭하신

바로 대사제 주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르티매오 역시 무지하여 길을 벗어난 이들에 속했지만

주님을 찾는 갈망의 믿음은 참 강렬했고

마침내 그의 영적 안테나에 주님이 포착되었습니다.

나자렛 예수님이라는 소리를 듣는 순간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기리에입니다.


우리 또한 바르티매오처럼

미사가 시작되자마자 간절한 기도, 기리에를 바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많은 이가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바르티매오의 주님 찾는 열망의 불을 끌 수는 없었습니다.

연거푸 바치는 그의 간절한 기도에 마침내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셨고

사람들은 지원군이 되어 그를 격려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기리에로 미사를 시작한 우리 형제자매여러분을 향한 말이기도 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 주님께 오십시오.

바로 미사 중 말씀의 전례, 성찬의 전례 안에서

갈망하던 주님을 만나게 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은 바르티매오의 간절한 기도, 기리에에 응답하여 그를 만나주십니다.


주님과의 만남이 관상이요 축복이요 구원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해갈되는 주님 찾는 갈망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가는 바르티매오입니다.

동작의 변화에 주목해야 합니다.

길가에 앉아 있던 바르티매오가 주님을 만나는 순간 벌떡 일어납니다.

그대로 희망으로 부활하는 바르티매오를 상징합니다.

우리 역시 미사 중 주님을 만남으로

불안과 두려움, 근심과 걱정의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주님을 만나 기쁨과 평화의 옷을 갈아입게 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에게 했던 똑같은 물음입니다.

이 둘의 대답을 기억할 것입니다.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아주 적나라한 인간의 세속적 욕망의 반영입니다.

그러나 바르티매오의 답은 전혀 달랐으니 그는 진정 구도자였습니다.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보다 중요한 대답은 없습니다.

여기서 눈이 상징하는바 육안이 아닌 심안이요 영안입니다.

마음의 눈으로 잘 봐야 유혹에, 환상에, 착각에, 오해에 빠지지 않습니다.

눈이 있어도 탐욕에, 질투에, 교만에, 무지에 눈이 가려

보지 못하는 자 얼마나 많습니까?

진정 관상가는 환상을 꿰뚫어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하느님을, 이웃을, 자연을 직관하는 자입니다.

우리 역시 이 거룩한 미사 중

주님의 말씀과 성체의 은총으로 마음의 눈 활짝 열려

주님을 만나는 복된 관상체험을 합니다.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과의 만남의 관상은 주님을 따라 나서는 선교의 여정으로 완성됩니다.

관상이 꽃이라면 선교는 열매입니다.

주님과 만남의 관상체험에 이은 주님의 즉각적인 선교명령입니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흡사 미사가 끝났을 때

‘미사가 끝났으니 주님과 함께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는

파견 말씀 같습니다.

하여 오늘 복음의 구조가 그대로 미사의 구조와 일치됨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앉아 기다리다 일어나 주님을 만났던 바르티매오에게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앉다-서다-가다로 이어지는 동작의 변화가 생명의 길을 보여 줍니다.

갈망의 믿음으로 구원되어 눈이 열려 다시 보게 된

바르티매오의 내적시야는 참 깊고 넓었을 것입니다.

다시 보게 된 바르티매오는 곧장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바르티매오에게 활짝 열린 생명의 길,

주님과 함께 하는 선교여정의 길이

시작되었음을 뜻합니다.

예레미야를 통한 예언이 그대로 실현됨을 봅니다.

“그들은 울면서 오리니, 내가 그들을 위로하며 이끌어 주리라.

  물이 있는 시냇가를 걷게 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곧은길을 걷게 하리라.”

주님을 따라 선교 여정 중에 있는 이들을 향한 축복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을 찾으십시오.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을 따르십시오.

바로 갈망의 믿음, 만남의 관상, 따름의 선교가 생명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의 눈을 열어 주시어

다시 당신을 따라 길을 나서게 하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