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작성자김영범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28 조회수304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 복음에서  '기리에' (자비송)의 작사가 '바르티메오'를 만납니다.


 그는 주위의 만류에도 더 큰 소리로 간절히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는 예수님께서 자기를 구원 시킬 수있다고 확실히 믿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예수님께서 그를 보기를 원하시자 주위에서 그를 돕습니다.

" 용기를 내어 일어나게. 예수님께서 당신을 부르시네"


가끔 주일 미사 보기가 매우 곤란한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 해도 무리일 것 같아 포기 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비로 우리는 용기를 낼 수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일을 중단 하고 발걸음을 성당으로 옮깁니다.

이러한 도움이 없이 미사를 그저 동네 가게 가듯이 갈수 있다는 것은 교만입니다.

어차피 미사는 하느님의 인도함이 없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바르티메오는 갑자기 겉옷을 벗어 던지고 예수님 앞에 갑니다.

'겉옷'이란 자기라는 틀 , 자기의 것, 아집과 같은 것들의 상징 입니다.


"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

" 스승님, 제가 다시 볼 수있게 해 주십시오. "


본다는 것은 정말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보실때 절대로 겉모습을 보지 않습니다.

바로 마음 깊숙한 한 가운데 를 보시길 원합니다.  

바르티메오는 절대로 소극적으로 예수님께 간청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간절함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은 처음 부터 그 마음을 보고싶어 하였습니다.

간절한 마음...

어쩌면 예수님은 우리의 간절함 보다 더 간절하게 우리를 찾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 간절함과 간절함이 진리이신 예수님과의 일치로 연결 되어

바르티메오는 결국 예수님을 따릅니다.


짧지만 매우 감동적인 이야기 입니다.

특히 예수님을 따른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께 받은 은총에 대하여 반드시 '감사하는 마음'과 전적으로 예수님

께 '의탁하는 마음'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 뭐 예수님이니까 당연히 베푸신 은총 아닌가? '

라고 하면 반드시 그 은총은 악행을 행하는 도구로 전락 됩니다.

바르티메오가 처음에 예수님을 부르던 '간절한 마음',

또한 과감히 자기의 틀을 깨고 예수님 앞에 섰던  '의탁하는 마음'은

눈을 뜬 기적보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는 더 크고 값진 기적이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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