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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바르티매오가 벗어 던진 겉옷의 의미는?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0-29 조회수203 추천수0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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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육을 따르는 자들은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성령을 따르는 이들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의 관심사는 죽음이고 성령의 관심사는

생명과 평화입니다."(로마 8,5-6)

 

기도 중에 아들이 고등학교 다닐 때, 제가 세례받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그 체험은 너무나 강렬했기에 제 삶을 지금도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진실로 육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생각과 느낌 그대로 살아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기분 나쁘면 기분 나쁜 것(상처 받으면)을 그대로 표현하고 그것도 모자라

어떻게 하면 나를 기분 나쁘게 한 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나를 연구하며

머리를 굴리던 사람이었습니다. 

 

세례를 받고 성서 사십주간을 시작하자 수녀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면서 자신에게 꼭 필요한 성서 구절 하나씩은 꼭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그 때에 택한 성경 구절이 저는 두 개 있습니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르 10,45) 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이 말씀을 택하였고 이 말씀을 살아내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사춘기인데다 상처를 심하게 많이 받았던 상황이어서 제가 무척

많이 힘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아들이 힘들게 하는 어떤 상황이 생기면

바로 제가 택한 두 말씀을 되뇌였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 화가 식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일하면서 육을 따라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니가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내가 저 좋으라고 그러는 거지!

...  그러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났습니다.

 

그러던 한 순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거지?"

그러자 뭔가 깨달아 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 나는 여태 죽이는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

 

왜 죽이는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거야?

그러면서 살리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에 학교에 등교하면서 속상하게 했기에 돌아오면 어떻게 죽일까를

생각하지 않고 상처받고 학교에 간 그 아들이 돌아오면 뭐라고 위로를

해 줄까에 관심이 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달라지게 된 계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한 묵상을 하면서 이 모습을 기억하게 해 주셨습니다.

육을 따르는 자의 모습과 성령을 따르는 이의 모습이 어떻게 다른지

직접 살아 보았고 지금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에서 본 제 모습은 또한 이러했습니다.

께어있지 않으면 아주 쉽게 육을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살피지 않으면 아주 쉽게 육을

따라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가 육을 따라 살면 저만 고통스러우면

좋으련만 제가 육을 따라 살면 온 공동체가 고통스럽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온 공동체가 죽음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공동체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모두 그분의 지체이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작은 암세포(내가 육을 따라 살면)에 의해서 한 사람(세상 공동체)이 죽을

수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이 묵상을 하면서 마르코 10장에 나오는 눈먼 거지 바르티매오를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 갔다고 성경은 전합니다.(마태 10,50 참조)

 

성경에서 겉옷의 의미는 아주 중요합니다. 단순한 의복이라는 의미를

넘어 자신의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기에 그렇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신의 겉옷을 입혀 주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넘겨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것을 토대로 바르티매오가 겉옷을 벗어 던졌다는 의미는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바로 그가 육의 욕망을 모두 벗어 버렸다고

묵상한 것입니다.

 

우리는 육(겉옷)의 관심사를 생명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가 하는 세상 걱정(마태 6장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이

육을 따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의로움을 구하는 것이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었습니다.

 

바르티메오는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을 알아 봄으로써 겉옷을 벗어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그토록 다시 보고 싶어하던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마음(뜻)" 이었습니다.

 

이 세상 사물들을 다시 보게 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을 보야야 하는데 바르티매오는 그것을 보고 싶어했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진실로 하느님을 보고 싶어했던 간절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바르티매오의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아멘.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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