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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01 조회수985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Mt.5,3)


제1독서 요한묵시록 7,2-4.9-14
제2독서 1요한 3,1-3
복음 마태오 5,1-12ㄴ

우리는 ‘주고받는다.’라는 말을 종종 씁니다. 즉, 내가 준만큼 나 역시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주고받음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요? 숫자상으로 정확하게 50:50으로 그 기준을 나눌 수가 있을까요? 이러한 사람을 종종 봅니다. 자신이 이렇게 베풀었는데 상대방의 반응은 시원치 않다고 말지요. 그리고 하는 말, “저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어떤 이는 자신이 강력하게 항의를 해서 더 많은 혜택을 보았다고 자랑을 합니다.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항의도 될 수 있지만, 무조건 해달라고 소위 요즘 유행하는 개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것처럼 “바꿔줘~~”를 연발하니까 이득을 보았다고 자랑하지요. 그러나 그 상대방은 이런 나를 향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요?

“저렇게 경우가 없는 사람이 또 어디에 있을까요?”

나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것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야기할 때에는 더 많은 것을 주지 않는다고 말하는 우리의 이중성을 종종 보게 됩니다. 저 역시 이러한 이중성의 범주에 속해 있을 때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이러한 상태에서는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우리의 가정을 바라보십시오.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시는 부부들을 보면, 50:50으로 주고받는 것을 원칙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히려 50%가 아닌 100% 주는 것에 집중할 때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결혼을 돈 넣은 만큼 물건이 나오는 자판기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내가 받을 것을 계산하면서 살다보면 결국은 헤어지는 불행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지요.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역시 주는 사랑이었기에 결국 주님의 길을 따라가는 그 삶은 행복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받는 것에 대한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복선언을 하시지요. 어떤 사람이 행복한 사람인지를 말씀하시는데, 문제는 세상의 기준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 온유한 사람,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 마음이 깨끗한 사람, 평화를 이루는 사람,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 사람들로부터 ‘안 됐다’라는 위로를 받아야만 할 것 같은 사람이지만, 주님의 길을 가는 이들이야말로 하늘에서 받을 상을 얻을 것이며 이로써 세상의 누구보다도 행복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모든 성인 대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어떻게 생활하셨을까요? 받는 삶이 아닌 주는 삶에 집중해서 사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신들의 모범으로 보여주셨고, 오늘 특별히 그런 모범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내 자신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살았을까요? 주는 것 몇 %, 받는 것 몇 %면 행복할까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많이 기울어질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

 

아무리 작은 것도 만들지 않으면 얻을 수 없고, 아무리 총명해도 배우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노력과 배움 없이는 인생을 밝힐 수 없다(장자).


어떤 분이 감을 보내주셨습니다. 실하게 생겼지요? 잘 먹겠습니다.



죽음에 대해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하는 어떤 분이 병동 안에서 보았던 사람들의 모습과 자신의 느낌을 적은 책을 출판했습니다. 그 책에 나온 내용입니다.

자신의 평균적인 삶을 기꺼워하는 통계원 뮐러는 평균수명 74세보다 겨우 3년 일찍 죽는 것뿐이라며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인다. 17개월 된 딸을 소아암으로 떠나보내며 엄마는 “어쨌든 살아 보기는 했으니까 됐어.”라고 중얼거린다. 마지막 말로 “안녕, 내일 보자!”며 인사하고 떠난 베르벨이 있는가 하면, 56년을 함께 살아온 폭군 남편과 마지막으로 화해하고 떠난 80세의 베닝 할머니도 있다. 51세의 바르바라는 죽어라 일만 하다가 이제 좀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려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다고, 만약 기적이 일어난다면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고 고백한다.

지금 나는 죽음의 순간에서 이 죽음을 어떻게 대할까요? 위령성월의 시작인 오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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