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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을 구걸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걸인]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04 조회수404 추천수2 반대(0) 신고

이번에는 첫 번째 이야기인 <하느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에 대한 '이 사랑'에 관한 인간의 이야기이며 삶의 이야기이고 말씀의 이야기 곧 묵상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첫째 계명은 어쩌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구걸하는 듯이 보여집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시어 사람에게 당신을 향한 사랑을 이처럼 원하시는 것일까요.

예전에 오래 전에는 알지 못했습니다. 알고도 싶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피조물들에게 우상을 섬기지 말고 '창조주를 사랑해야 한다'는 마땅한 의무로써만 받아들였던 것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 날이 있었습니다. '말씀'께서는 당신의 말씀으로, 진리의 영을 통하여 '인간의 삶'을 비로소 해석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지 당신의 말씀을 이야기해 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께서는, 다음과 같은 '당신의 말씀'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의 '말씀'을 인간의 삶 속에서 당신 말씀이신 '진리의 영'을 통하여 이야기 해 주셨던 것입니다. 마태 복음서 25, 40절 말씀입니다.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말씀'께서는 가장 보잘것 없는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예수님 당신께 해 준 것이다하고 당신의 '말씀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의 말씀을 진리의 영을 통하여 이야기 해 주셨다 할 것입니다.

'이 깨달음'은 인간이 말씀을 해석한 것이 아니라, 말씀께서 인간을 해석해 주신 이야기인 것입니다. 바로 '한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이야기 해 주셨으니 [ 내 말 안에 머무르면너희가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요한 8,31 ; 32 참조) ]는 말씀은 조금도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안에 머무르면 말씀께서는 자주 인간을 해석해 주십니다. 인간 자신의 삶을 해석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해석하기가 어렵지만. '말씀'께서 말씀으로 인간의 삶을 해석해 주신다면, 그 말씀을 깨달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어떤 때는 '그 말씀'이 인간의 가슴을 울려 눈물을 흘리게도 하고, 어떤 때는 가슴이 벅차서 기뻐하기도 합니다. "내 말은 영이다"(요한 6, 63) 하신 말씀의 '진리의 영'이 말씀의 샘에서 우리 기도의 눈물과 기쁨의 생수로 주시는 것입니다. 
 
교리서 2560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만나시려고 우물가로 나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시고, 마실 물을 달라고 우리에게 청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께서 목말라하신다. 예수님의 청은 우리를 갈망하시는 하느님의 깊은 목마름에서 나온다. 우리가 알든 모르든, 기도는 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이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목말라하기를 갈망하신다.

참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하느님)에게 해 준 것이다>를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찾으시는 분이시고, 마실 물을 달라고 우리에게 청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걸하는 사랑은 이처럼 이웃을 사랑해 준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사랑의 걸인'이 되신 까닭은 바로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이유가 인간을 통하여 인간을 사랑하시려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걸하신 것이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둘째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입으로 말하면서도 자기 이웃을 행동으로 사랑하는데는 재빠르게 뒤돌아서고 인색하기만 한 사람들이 진정 올바른 하느님과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알아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 바리사이들과 같은 '성전주의자'들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성전을 맴돌고 다닐 뿐 [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하신 말씀은 깨닫지 못합니다. "돌로 된 성전 보다 더 가치가 있는 성전은 살로 된 성전입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사람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오직 '한 사람'입니다. 길잃은 양을 메고 오시는 '하느님의 어린 양'이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자기 십자가' 자체가 삶의목적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통해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요한)

하느님은 '사랑의 걸인'이십니다. 인간을 사랑하시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구걸하시는 '사랑의 걸인'이십니다. '사랑의 걸인'은 사람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음식을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실 물을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복을 구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성부께서는 사랑을 구걸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구걸을 뿌리치는 손길은 곧, 하느님의 자비를 뿌리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입니다." (복음서) 사랑을구걸하는 걸인이다고 멸시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멸시하는 사람이 되어 집니다. 내 안에그리스도께서 사신다 할 때 이는 내 안에 '사랑이 부활'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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