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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를 향한 여정 - 깨달음, 치유, 자유 - 11.8.목,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08 조회수448 추천수6 반대(0) 신고

2012.11.8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필리3,3-8ㄱ 루카15,1-10

 

 

 

 

 



자유를 향한 여정

 

-깨달음, 치유, 자유-

 

 

 

 

 



오늘은 ‘자유’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본능적으로 자유를 찾는 사람입니다.

자유로울 때 인격의 실현이요 행복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여정은 그대로 자유를 향한 여정입니다.

하느님은 자유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

 


과연 점차 자유로워지는 삶인지요?


우리의 크고 작은 깨달음은

존재의 원천인 하느님께 대한 깨달음에 닿아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의 은총보다 더 좋은 명약은 없습니다.

 

대부분 심신의 질병은 무지에서 기인하고

깨달음의 은총이 무지의 어둠을 몰아낼 때 저절로 치유요 자유입니다.


깨달음과 자유는 함께 갑니다.

 

진정 각자(覺者)만이 자유인(自由人)으로 살 수 있고

이런 이들만이 스승이 될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자유인의 예를 나눕니다.

 

 

 


“遊(유); 훨훨 날아 자유롭게 노닐다-유유녹명종교나눔터”

 

 

 


얼마 전 수도원을 방문한 분들에게 받은 명함입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종교 간의 대화와 나눔을 통해

더 큰 자유를 찾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예전에 제가 써 놓았고 자유로워했던,

‘하늘 보면/마음은/훨훨 날아/흰 구름 되네.’

시와 일맥상통하여 반가웠습니다.

 


얼마 전 배 철수씨가

‘100년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 한 목소리’라 극찬을 한

  최 백호 대중음악가의 인터뷰 기사 중 마지막 대목도 강렬했습니다.

 

 

 


-‘나이 드는 게 신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들었다-

 

“정말이다.

  나이 들면서 좋은 일들이 더 많이 생겼으니까.

  가수로서 새 삶을 살게 해 준 ‘낭만에 대하여’는

  20,30대에는 절대 못 만들 노래다.

  세월은 그저 덧없이 흘러가지 않는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쌓여간다고 생각하면 진짜 멋지지 않나.

  좋아서 즐겁게 노래하니 나이 들수록 실력이 는다.

  괜한 이야기가 아니고 목청도, 호흡도, 감정표현도 더 좋아졌다.

  아마 내 생애 최고의 앨범, 최고의 노래는 아흔쯤 나오지 않을까 싶다.

  (웃음)”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의 자유로움이 가득한 고백입니다.


어제 읽은 장자의 우화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사람의 생사, 화복, 수명, 그리고 일의 연월연일을

  귀신처럼 예언하는 신들린 무당이 있었다.

  제자가 안내하여 호자(壺子)라는 현자의 관상을 보게 하였다.

  무당은 그의 상을 보고 죽음이 임박했다고 하고,

  그 다음은 병이 나아 생명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 다음 번에 무당은

  얼굴의 상이 변화가 심해서 관상을 볼 수 없다고 하면서

  호자를 피해 달아났다.’

 

 

 


이에 대한 풀이가 심오합니다.


‘처음 호자는 무당에게 땅의 징조를 보여줬고,

  두 번째는 하늘과 땅의 조짐을 보여주었다.

  호자가 세 번째 보여준 것은 표면적인 증상을 넘어 가는 본질적 실체였다.
  그러나 무당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 버리고 말았다.’


흡사 복음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소리치며 달아난 악령들을 연상케 합니다.

 


호자나 예수님 같이 본질적 실체를 사는 이들이 자유인입니다.


본질적 실체인 하느님을 깨달아 알아갈수록 치유요 자유입니다.

그 무슨 환상이나 우상도 이들을 유혹하지 못하며

두려움이나 불안도 발붙이지 못합니다.


사실 무지로 인한 환상, 우상, 두려움, 불안이요

깨달아 자유로워지면 저절로 자취 없이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

독서의 바오로 사도가 진정 각자요 자유인입니다.

 


현실도피적인 자유가 아니라

현실 안에서 자유로운 처신으로 함께 하는 모든 이들을 자유에로 이끄신

예수님이요 바오로입니다.

 


세리들과 죄인들과의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식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야말로 무엇에도 매이지 않은 예수님의 자유로움을 반영합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투덜거리는

종교적 엘리트들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예수님은 되찾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은전의 비유를 통해

이들을 깨달음의 자유에로 이끄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하느님을, 하느님의 기쁨을 체험했기에 이런 확신에 넘친 고백입니다.


이런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깨달아 살았기에

예수님은 진정 각자요 자유인 되어

만나는 모든 이들을 하느님의 자유에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오로의 고백을 통해 사도의 깨달음과 자유의 비밀이 환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바로 그리스도께 대한 깨달음이

사도 바오로를

세상 모든 육적인 것으로부터 초연한 자유를 누리게 했음을 봅니다.

 


하여 하느님의 영으로 예배하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자랑하며

육적인 것을 신뢰하지 않음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유를 누리며 살았던 바오로 사도였습니다.

 


우리 수도승의 정주 서원 역시 자유와 직결됨을 봅니다.

하느님 중심 안에 정주가 깊어질수록

하느님께 대한 깨달음과 더불어 자유도 깊어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깨달음의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치유해주시고 자유롭게 하십니다.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시편36,10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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