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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채찍이 필요한 이유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09 조회수637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라떼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 예수님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


복음: 요한 2,13-22






성전 정화


엘 그레코 작, (1600),  런던 국립미술관


     < 채찍이 필요한 이유 >

        저는 요즘 오랜만에 외로움을 느껴보았습니다. 며칠 동안 사제들이 함께하는 연수에 다녀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신부님들이라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칭찬을 해 주고 말을 잘 들어주며 호의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군중속의 고독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오래전에 저의 생일파티에서 느꼈던 것과 비슷한 외로움이었습니다. 저를 축하해주러 온 사람들이 저를 많이 축하해주었습니다. 얼굴에 케이크도 묻히고 술도 많이 따라주었습니다. 제가 얼굴에 묻은 케이크를 닦으러 잠깐 화장실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저 없이도 행복하게 잘 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때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나를 주인공으로 여겨주기를 바라지만 누구나가 다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기에 사람은 사람의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에게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이 없어도 그렇다고 가슴 벅차도록 나를 채워주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정작 내가 만나야 할 나를 가장 사랑해 주셔서 나를 주인공으로 여겨주시는 그리스도를 만나는데 방해가 됩니다.

 

복음에서 풍랑이 이는 속에서 제자들이 빠져죽게 생겼지만 예수님은 잠만 주무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당신을 불러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제자들은 자신들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만약 제자 한 사람과 예수님 한 분만 배 안에 계셨다면 평생 어부였다는 자존심 내려놓고 더 빨리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요? 저는 여럿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서로에게 자신의 경험을 인정받기 위해 힘쓰다가 예수님께 도움 청하는 것이 조금이라도 더 지연되어 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사람들은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오늘 예수님은 채찍으로 기도를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쫓아내십니다. 기도란 하느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느님은 만나려고만 한다면 언제든 그 사람을 위해서 잠을 깨고 일어나십니다. 그러나 수많은 세상의 애착과 관심으로 하느님을 만나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밤이나 새벽에 홀로 기도하러 나오셨겠습니까? 사람이 있으면 기도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기도를 방해하는 요소들입니다.

 

저는 외로움을 느끼면 홀로 숨습니다. 혼자 있을 땐 외롭지 않지만 사람과 함께 있을 때면 외로워집니다. 그 때면 채찍으로 사람들을 몰아내야합니다. 저도 이번 연수 때 군중속의 고독을 조금 느끼고 나서는, 기회만 되면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려 했습니다. 남들은 사진 찍을 때 홀로 앉아서 햇살을 맞으며 주님과 만나고, 남들이 커피 마시러 들어가면 혼자 바다를 보면서 그 분을 만나려했습니다.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졌고, 마음이 편해지니 다른 잘 보이려는 행동을 하지 않아도 주위의 신부님들이 저를 편하게 대해주시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은 로마의 주교좌성당으로 교황님이 아비뇽으로 가셨다가 바티칸으로 오시기 전까지 사셨던 성당의 봉헌축일입니다. 그 성당 앞에는 프란체스코의 동상이 있습니다. 프란체스코가 자기 수도회의 인가를 위해 교황님을 찾아왔는데 그 성당의 크기를 보고 놀라는 장면이 동상으로 만들어져있습니다. 그러나 교황님은 처음에 프란체스코를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꿈에 그 성당이 허물어져 가는데 한 거지가 어깨로 그 기둥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서 프란체스코를 다시 불러 그 회를 공식으로 승인해줍니다.

프란체스코는 세상과의 단절을 위해 가난을 선택했고, 겸손해지기 위해 사제품을 받지 않았으며, 육체를 이기기 위해 가시밭에 뒹굴었습니다. 이것이 성전을 깨끗이 정화하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을 만들어 성전을 정화하였듯이, 나도 다른 것들에 정신 팔리지 않기 위해서는 채찍을 써야합니다. 그래야만 내 성전이 기도하는 집이 되고 그래야 외롭지 않아 다른 이들에게도 편안함을 주는 사람이 됩니다.

오늘은 내가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리지 않기 위해 애착을 갖는 모든 것들을 끊어버리기 위해 채찍을 사용하여 정화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애착을 갖는 무엇이나 다 내 안에 그 분을 만나는 것들을 방해하는 것임을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나도 성전입니다. 내 성전을 위해서 채찍을 항상 만들어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전설에 의하면 교황 이노첸시우스 4세와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청의 발코니에서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중세 때의 교회의 부와 권력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았고 낮은 위치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마침 교황청으로 돈 주머니가 수송되어 오는 행렬이 있었습니다. 교황은 그것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저기 봐요. 이제는 금과 은은 내게 없노라고 교회가 말하던 그런 시대는 지나갔소.”

 

이 말은 성전에서 교회의 수장이었던 베드로와 함께 요한이 지나갈 때 앉은뱅이가 자선을 청하자, 베드로가 대답했던 말을 인용해 그 때처럼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는 뜻으로 한 이야기입니다.

 

토마스 성인이 이를 받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앉은뱅이더러 일어나 걸어라.’하고 교회가 말할 수 있던 시대도 지나갔습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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