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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0 조회수614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I tell you, make friends for yourselves
with dishonest wealth, so that when it fails,
you will be welcomed into eternal dwellings.
(Lk.16,9)


제1독서 필리피 4,10-19
복음 루카 16,9-15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그물에 사람의 뼈가 걸려 올라왔답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뼈에 200Kg의 금괴가 허리띠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의 기록을 살펴보았지요. 바로 그 자리에서 배가 난파를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조난자들이 모두 구출 받았는데 딱 한 사람만이 실종되었다는 기록이 있었습니다. 200Kg의 금괴를 허리띠에 걸고 있는 그 뼈의 주인공이 실종자였다는 사실이지요. 아마도 이 사람은 배가 난파하자 200Kg의 금덩어리를 허리띠처럼 두르고 바다에 뛰어든 모양이었습니다. 그 황금이 아까웠던 것이지요. 그러나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황금은 자신의 생명을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황금 200Kg이 없어서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요? 조금 더 많은 돈을 벌려고 하고, 조금 더 높은 지위를 꿈꾸는 나. 또한 남들로부터 인정받기만 바라는 나라면 분명히 황금 200Kg을 허리띠에 걸고 뛰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이것이 나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지금 이 순간을 만족하면서 살게 되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 이 자리가 행복할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지요. 세속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때, 그리고 매순간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바로 행복해지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 이를 찾는다면서도 다른 것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에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비웃지요. 왜냐하면 ‘돈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는 식의 비웃음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우리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하느님 앞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가 중요합니다. 그러기위해서는 지금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야 하며,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잠자리,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 길거리의 커피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 한 잔 등등……. 생각해보면 가진 것이 너무나 많은 우리였습니다. 이렇게 가진 것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할 수 있는 조건들도 많다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의 눈은 가진 것보다 갖지 못한 것에 눈이 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자이기보다는 가난한 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나를 지금 이 순간 발견하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보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아인슈타인)



어떤 분이 선물로 보내주셨어요.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감사합니다.



무엇에 집착하는가?
 

숲속 오솔길에서 만난 너구리와 원숭이가 탐스럽게 잘 익은 산머루 한 그루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은 서로 자기 집으로 이 나무를 가져가겠다고 했지요. 이렇게 시비가 벌어지다가 결국 이 나무를 공평하게 반으로 잘라서 나누어 갖자고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누가 어느 쪽을 갖겠느냐는 것이었지요.

약삭빠른 원숭이는 산머루가 가득 달려있는 위쪽을 가져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너구리는 아무것도 달려있지 않은 뿌리가 있는 아랫부분을 가져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리고 너구리는 이 아랫부분을 땅에 심었습니다.

원숭이는 한 해만 산머루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에는 먹을 수 없었지요. 이에 반해 너구리는 첫 번째 해에는 산머루를 먹을 수 없었지만 그 뒤로 해마다 산머루를 따먹을 수 있었습니다.

눈앞에 달려있는 열매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눈앞이 아니라 멀리를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삶,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꿈꾸는 우리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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