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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당신부터 먼저 살아라 한다 [ 쥐약을 먹이다 ]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0 조회수428 추천수0 반대(0) 신고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마르코 12,41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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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 이런 행태에 대하여 오늘 날에는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썩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무엇인가 맹신 혹은 광신 따위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신교 쪽에서는 특히, 이같은 문제성이 빈번하게 일어났던 탓도 있었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육적인 시각이 영적인 시각을 흐리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러할까요. 잠시 다음으로 넘어가기 전에, 한번쯤 찾아 볼 수 있는지 스스로를 한번 체크해 보는 것도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싶습니다.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 그래서 무엇인가 맹신 혹은 광신 따위로 여길 수가 있을 것입니다. 육적인 눈은 세상의 시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예수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아 듣지 못한다 하겠습니다.예수님의 가르침은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가 당신 말씀의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세상적인 편견에서 사로잡힌 사람은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가 전부인 것으로 보게 되어지고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또한 사랑의 체험이 없는 사람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안개와도 같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가 아니라,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라는 가르침입니다.여기서 예수님 말씀의 가르침은 영(하느님)적인 눈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신 말씀의 의미가 열려지게 됩니다.영적인 눈은 사랑의 시야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해당됩니다.  

아무리 교회 안,밖에서 봉사생활을 열정적으로 행한다고 하더라도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라는 사람은 아주 극히 드문 일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봉사는 진정한 봉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단지 봉사를 살아가는 한 방편으로 삼는 것뿐입니다.

가정에서 부모님의 일체 간섭으로부터 도피하고, 직장 일을 하기 싫은 탓이기도 하고, 하루종일 스포츠 토토에 빠져 지내고 싶고, 알콜에 중독되어 술 먹는 일에 간섭받는 일없고, 야간이면 디스코 장에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등등의 저질적인 봉사가 있습니다.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다"는 가르침은 알수 없습니다.

어떤 성직자분들도 알 수 없는 가르침이며, 어떤 수도자분들에게는 더욱 수수께끼와 같은 진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거짓된 봉사를 하는 평신도들에게는 분명히 가려진 진리의 빛은 예수님의 말씀을 그저 읽기만 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자신의 삶이 완전한 사랑의 행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면 언제나 '감추어진 하늘 보화'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완전한 사랑'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완전한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해서 이런 '가난한 과부'와 같은 완전한 사랑의 봉헌적 삶이, 우리네 주변에서 쉽게 볼 수가 있을 정도로 흔하지가 못할까요. 그러므로 혈육에서 난 사랑이 아니라, 영혼에서 난 사랑이다 할 수 있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하느님(영)에게서 옵니다.

완전한 사랑은 무엇보다 우리 주님이신 예수님에게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성부(사랑)께서 성자(사랑)를 '내어 주신' 바, 사랑에서 난 사랑, 곧 완전한 사랑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無의 걸인'이십니다.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신의 가진 것을 전부다 내어 주시는 '사랑체'이십니다. 반드시 부자이어야만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할 것입니다. 

자신이 우선 잘 살고 나서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은, 오직 '돈'을 섬기기 위함에 불과합니다. 가난한 처지에서도 사랑을 행동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죽기 전까지 '사랑'을 알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고 죽는 사람입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에게서 나는 사람은 사랑을 압니다. 

노가다 일을 하는 조선족 사람들은 사랑을 모릅니다.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 노가다를 합니다. 그들은 '장애아기가 태어나면 산에다 버리는데 빨리 숨 끊어지라고 '쥐약'을 먹인다'고 합니다. '사랑'을 모르고 '돈'만 아는 사람들은 생명까지도 모르는 것입니다. 사랑을 모르고 '돈'만 아는 그들에게는 '하느님'이 없습니다. 바로 당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리서 2544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모든 것과 모든 사람에 앞서서 당신을 더 사랑하라고 명하시고, 당신과 복음을 위하여 그들의 소유물을 모두 버리도록 권고하신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 바로 전에, 궁핍한 가운데서도 살아가기 위해 지녔던 것을 모두 바친 예루살렘의 가난한 과부를 본보기로 드셨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려면, 재물에 대해서 초연하라는 계명을 꼭 지켜야 한다. 교리서 915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는 다양한 복음적 권고를 받고 있다. 모든 신자는 완전한 사랑으로 부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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