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용서하려하지 마라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1 조회수888 추천수14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회개합니다."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


복음: 루카 17,1-6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


카라바죠 작, (1610), 뉴욕 쉬크만 미술관


     < 용서하려하지 마라 >

        우리는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거나, 혹은 내가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 생길 때 상대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누가 돈을 떼먹고 도망가서 미워지고, 나에 대한 험담을 뒤에서 하고 다녀서 미워지고, 나를 무시해서 미워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미워하는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성모님은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써니란 영화에 일진 여자아이가 주인공 여자아이를 무조건 싫어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 주인공은 그 아이가 자신을 왜 싫어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데 단순히 자신이 제일 싫어하는 새어머니와 같은 지방의 사투리를 쓰기 때문이었습니다. 미움은 그냥 자신의 문제인 것입니다.

 

오늘 어떤 분이 거의 20년 동안 성당에 나오지 않다가 냉담을 풀고 다시 성당에 나오게 되셨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상처가 너무 커서 거의 대인기피증을 앓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결국 저에게 용서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문제는 용서를 하려고 하는 것에 있습니다. 상대의 잘못이 아니고 나의 잘못 때문에 미움이 생기는 것인데 상대의 잘못을 용서하려고 하니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분보고 이렇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용서하지 않아서 무척 힘들었고,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으니 너무 괴롭죠?”

!”

그리고 용서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그 상처가 끊임없이 나를 괴롭힐 것도 잘 알고 계시죠?”

!”

그러나 용서하려고 해도 용서가 안 되죠?”

!”

그래요, 차가 기름이 없으면 달릴 수 없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기름이 없는 차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금 그런 상태예요. 우선 용서하려는 생각은 잊으세요. 문제는 에게 있습니다. 용서는 의 잘못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간단하게나마 용서의 원리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떤 누구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상대는 나에게 상처를 입힌 줄도 모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안에 화와 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그저 내 안에 있는 화와 미움을 휘휘 저어서 되살아나게 할 뿐입니다. 그것이 있다면 나에게 상처를 준 그 사람이 아닐지라도 다른 누구에겐가 똑같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나 성모님은 왜 수많은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으실까요? 그 이유는 당신 안에 미움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어항을 하나 상상해보면 좋을 것입니다. 그 안에 물고기가 있습니다. 바닥에는 진흙이 가라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나뭇가지로 그 어항을 휘휘 졌습니다. 그러면 바닥에 있던 진흙이 위로 올라와 어항이 온통 지저분한 오물로 가득차고 물고기는 그것 때문에 어두움에 갇혀 제대로 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일단 진흙이 어항에 가득 일어나게 되면 손으로 아무리 누르려고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또 누군가가 뒤흔들면 그 가라앉아 있던 것은 다시 솟아오릅니다. 이런 것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내 안의 진흙부터 걷어내야 합니다. 각 종교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 다르지만 우리는 이 진흙을 자아, 혹은 죄라고 부릅니다. 상처는 상처받을 자아가 있어야 생기는 것입니다. 그 자아가 없다면, 혹은 내 안에 죄가 없다면 외부의 어떤 영향에도 내 안에 화나 미움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내 안에 미움이 도사리고 있다면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 해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매번 화를 가라앉혀야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루에 일곱 번 죄를 지은 사람이 그 때마다 돌아와서 용서해 달라고 하면 용서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내 안에 화가 계속 일어난다면 그렇게 자주 잘못을 하는 사람을 계속 용서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들이 당신을 버리고 도망간 것에 대해 화가 나시고 그 화를 누르며 용서를 하셔야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그들이 도망갈 것도 다 알고 계셨고 그래서 화도 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용서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죄가 없으면 상처 받을 것도 없고 그래서 용서할 것도 없어집니다. 용서라는 어려운 길을 가는 것은 맨발로 가면서 매번 발을 아프게 하는 돌부리를 파내는 노력과 같습니다. 그러나 내 자신을 정화해서 죄 없는 사람이 되면 마치 신발을 신고 있어서 돌부리들이 나에게 어떤 아픔도 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맨발로 가면서 매번 돌들과 싸우는 것보다 신발을 신고 편히 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오산 성당 홈페이지: http://cafe.daum.net/ca-osan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