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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월 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2 조회수663 추천수16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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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루카 17,1-6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진정한 용서를 위하여>

 

 

    하루에도 일곱 번씩 용서해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 참으로 멋있어 보이고, 마음으로는 가능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정작 구체적인 상황 앞에 직면했을 때, 그 용서란 작업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모릅니다.

 

    내 삶을 송두리째 망쳐버린 그 사람, 내 사업을 완전히 말아먹은 그 사람, 내 인생에 제대로 매운 고춧가루를 뿌린 사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사랑하는 자녀의 앞길을 망친 그 사람을 제대로 정신이 박힌 사람이라면 어떻게 순순히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앞뒤 따져보지도 않고 무조건 용서하라, 과거는 잊어라, 상처는 빨리 봉합하라는 권고는 그리 바람직한 방법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용서에 이르기 위해서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회개하거든’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잘못을 저지른 저쪽에서 뉘우치지도 않고, 미안해하지도 않고, 희희낙락하고 지내는데, 그를 용서한다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입니다.

 

    진정한 용서란 누군가로부터 받은 수치나 모욕감, 죄악이나 폭력 앞에 외면하거나 눈감는 일이 아닙니다. 참으로 어려운 덕인 용서에 이르기 위해서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식별-분석-처벌-용서. 뿐만 아니라 깊은 상처가 아물기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도움입니다.

 

     진정한 용서란 패자나 약자, 힘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한없이 관대한 사람, 마음이 부자인 사람, 결국 마음 안에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를 무조건 기도와 영적 붕대로 빨리 감아 버리는 것, 과정과 시간을 건너뛰어 버리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며 나중에 더 큰 상처로 남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힘겨운 작업이 되겠지만 상처로 인한 아픔, 분노, 피해에 당당히 정면으로 직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갈등하고 괴로워하는 내 모습과 대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분노와 고통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 속에서 때로 힘들다고,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당사자를 비롯한 누군가에게 분노를 폭발시키기도 해야 합니다.

 

     상처로 인해 고통스러운 현재 내 모습을 직면하기보다 회피하고 수월해 보이는 ‘영적 우회로’(spiritual bypassing)를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상처를 피해 도망가지 마라는 것입니다. 깨어있는 의식 상태로 현실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안셀름 그륀, ‘사랑 안에서 나를 찾다’, 성바오로 참조)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나가야 하나? 이것을 나 혼자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가? 누구의 도움을 받을 것인가? 이 깊은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는 나에게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엇일까?

 

    이런 물음을 해나가다 보면 결국 인간의 힘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상처 치유, 진정한 용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로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가고 계시는 분들, 지금은 그 깊은 상처로 인해 생각할 겨를이 없겠지만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이 상처는 나를 하느님 사랑으로 이끈다는 것, 나 혼자서는, 그리고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상처를 완전히 치유할 수 없다는 것, 방법은 오직 한 가지 내 깊은 상처부위를 하느님께 열어 보여 드려야 한다는 것, 그 열려있는 상처부위로 하느님 사랑이 흘러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

 

    힘겨운 작업이 되겠지만 이런 노력을 통해 우리는 특별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상처 안에서도, 상처로 인한 큰 고통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깊은 내적 평화를 누릴 수 있게 됩니다.

 

    상처로 인한 고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분노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리저리 배회하지 않게 됩니다. 마침내 상처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상처는 하느님을 체험하는 은총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참된 용서가 가능한 순간입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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