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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6 조회수872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1월 16일 연중 제32주간 금요일



I tell you,
on that night there will be two people in one bed;
one will be taken, the other left.
(Lk.17,34)


제1독서 2요한 4-9
복음 루카 17,26-37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달 뒤에 첫 번째 시험을 치르게 되었지요. 시험이 끝난 뒤, 부모는 자신의 자녀에게 물었습니다.

“몇 점 받았니?”

그러자 이 아이는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대답했습니다.

“30점이요!”

그 순간, 이 아이의 부모는 크게 실망을 했습니다. 혹시 자신의 아이가 바보는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어떻게 첫 시험인데 겨우 30점 밖에 못 받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녀에게 ‘그건 부끄럽게 여겨야 할 점수야...’라고 말하려다가, 이렇게 물었지요.

“그래서 넌 기분이 어땠어?”

이 질문에 이 아이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매우 자랑스러운 얼굴로 대답했습니다.

“내가 맞힌 문제가 있다는 게 정말 신났어!”

이러한 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실 이런 식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정말로 신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30점을 인생의 목표로 삼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거둔 자그마한 성공에 대해서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다면 삶을 더욱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을 바라보십시오. 쓸데없는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아픔과 상처를 생산해내고 있습니까? 자기 자신들에게는 물론이고 내 가족들에게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는 아픔과 상처의 수는 정말로 무수한 것 같습니다. 바로 작은 것에 감사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 세상 마지막 날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노아와 롯 시대에 대한 말씀을 하시면서 우리들도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이 마지막 날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로 주님께 선택 받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선택되겠습니까?

한 아이가 있는데 이 아이는 작은 것을 받아도 기뻐하고 신나합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는 아무리 좋은 것을 줘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이런 것을 왜 줘요?’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아이를 좋아하시겠습니까?

이제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 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 그 모든 것에 대해(심지어 작고 하잘 것 없어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기뻐하며 사는 것. 아니면 모든 것에 대해(아무리 크고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불평불만으로 사는 것. 정답은 우리 모두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을 감사하며 기쁘게 사는 것. 어쩌면 우리의 마지막 날을 위한 가장 훌륭한 준비가 아닐까요?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대니 서).



어제 미사 후, 제의방 옷장에 붙어있는 글을 찰칵!!



거절한다는 것.
 

어제 꾸르실료 입소식이 있었습니다. 마침 교구청에서 함께 근무하는 신부가 꾸르실료에 입소한다고 해서, 봉사자들과 신부님들 간식꺼리를 사러 시장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매님 한 분께서 제가 사려는 간식꺼리의 값을 대신 지불하시려는 것입니다. 제가 누군지를 알고서 대신 계산해주시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서둘러 말했지요.

“제가 누구 선물하려고 사는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이 자매님께서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하시더군요. 정말로 사주고 싶었는데, 제가 정색을 하면서 거절을 하니 당황스럽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 모습에 저 역시도 약간 당황했지요. 그래서 사주시려는 마음만 받겠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어색해하시던 그 자매님의 표정이 제 머리에서 떠나지 않네요.

묵상을 하면서 제가 지혜롭지 못했음을 반성합니다. 그때 조금만 지혜롭게 이렇게 말했으면 어떠했을까요?

“이것은 제가 누구 선물하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냥 제가 계산하겠습니다. 자매님께서는 저를 위해서 하나만 사주십시오.”

저도 기쁘게 받을 수 있었을 것이고, 이 자매님도 좋아하시지 않았을까요?

세상의 그 누구도 ‘No’라는 대답을 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든 이들이 ‘Yes’를 원하고 있지요. 그런데 나의 불편한 마음을 생각하면서 ‘No’를 너무나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조금만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나의 불편한 마음도 좋게 만들면서, 동시에 상대방의 마음도 기쁘게 할 수 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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