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름다운 종말(終末) - 11.18. 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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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2-11-18 | 조회수436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2.11.18 연중 제33주일(평신도 주일)
다니12,1-3 히브10,11-14.18 마르13,24-32
이게 우리 믿는 이들의 복된 종말입니다. 전례력으로 종말을 상징하는 연중 33주일이요 계절 또한 늦가을로 종말을 상징합니다.
아름다운 종말을 상징합니다.
종말은 바로 구원의 희망임을 보여줍니다.
많은 사람을 정의 이끈 이들은 별처럼 영원 무궁히 빛나리라.”
우리 교회의 성인들입니다.
종말은 구원의 희망입니다.
끝이 시작이듯 종말은 구원의 희망의 시작입니다.
종말 같은 11월 위령성월이 끝나면 희망으로 빛나는 구원의 대림시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초점은 구원의 희망입니다.
그 때에 책에 쓰인 이들은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 또 땅 먼지 속에 잠든 사람들 가운데에서 많은 이가 깨어나, 어떤 이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어떤 이들은 수치를, 영원한 치욕을 받으리라.”
구원의 희망, 구원의 기쁨으로 가슴 설레게 합니다.
하느님이 종말이기에 우리의 종말은 기쁨이 됩니다.
세월 흐르면서 서서히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드러나는 보이는 미래의 실체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가 선택한 이들을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종말은 바로 하느님과의 만남이자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하늘과 땅 모두가 다 사라지는 종말에도 하느님만은 영원히 계시어 우리를 환대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과 충만한 삶의 시작입니다.
구체적 종말을 실감하는 게 죽음입니다. 하여 사막교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종말 같은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말씀하셨습니다.
장상으로부터 다음의 강복을 받고 잠자리에 듭니다.
이 밤을 편히 쉬게 하시고 거룩한 죽음을 맞게 하소서.”
언젠가 어느 분의 요청에 ‘거룩한 죽음’ 대신 ‘거룩한 새 아침’으로 바꿔드리며 크게 웃은 적이 있습니다만 이 또한 종말의 부활 희망을 상징하기에 마음 흡족했습니다.
오늘 새벽 성무일도 시간에 하느님을 찬양하며 깨달았습니다.
축복의 종말입니다.
찬미로 살다가 감사로 죽을 때 말 그대로 복된 종말의 죽음임을 깨닫습니다.
한 번 제물을 바치시고 나서 영구히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으신 그리스도(히브10,12)께서 우리에게 찬미와 감사의 삶에 항구할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의 종말입니다. 이를 일컬어 종말론적 삶이라 합니다.
하루하루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희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십니다. 하여 유비무환, 하루를 종말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입니다.”(마르13,33).
우리에겐 생명과 빛, 희망의 충만 입니다.
우리 모두 하루하루 희망과 기쁨이 넘치는 종말론적 삶을 살게 하십니다.
주 하느님을 피신처로 삼으리이다.”(시편7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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