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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가장 깨끗했던 사람, 자캐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19 조회수803 추천수10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


복음: 루카 19,1-10







아담과 하와의 추방



     < 가장 깨끗했던 사람, 자캐오 >

           201111월에는 14년 전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군대 가기 전 친구들과 택시기사의 돈을 빼앗고 엉겁결에 살인을 하기까지 하였던 한 사람이 14년 간 아무 의심도 받지 않고 살다가 공소시효 11개월을 남겨놓고 경찰에 검거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사건 일체를 자백하고 자필로 이렇게 썼다고 합니다.

피해자 가족에게 죄송하다. ... 그동안 죄책감에 시달려 밤마다 악몽을 꾸는 등 무척 힘들었다. 자살과 자수까지 생각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 경찰이 늦게나마 사건을 해결해줘 고맙다.”

이들은 엉겁결에 살인까지 저지르게 되었고 택시를 불태운 다음 군에 입대하였기에, 4년 동안 계속된 수사에서 아무 것도 찾아낼 수 없어서 그렇게 미궁 속으로 끝나버린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11개월만 잘 버텼으면 공소시효가 지남에도 불구하고 경찰에 검거된 이들의 심정은 후련하고 감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죄책감때문이었습니다. 그 죄책감 때문에 끝까지 참지 못하고 술자리에서 회사 동료들에게 그동안 감추어 왔던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동료들이 경찰에 신고하여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얼마 전에 상영했던 이웃사람이란 영화도 이런 죄책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어서 많은 호응을 받았었습니다. 죄책감을 느끼는 이들은 종교인들만이 아닙니다. 살인자들도 느낍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어떤 자신의 노력으로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죄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양심이 안정을 찾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씻겨지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들을 숨기고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위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위선자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솔직해 지는 것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용기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예리코에 들어가셔서 세관장 자캐오의 집에 머무시기로 결정하십니다. 자캐오는 자신도 인정하고 타인들도 인정하는 죄인입니다. 따라서 더 솔직히 죄를 고백할 필요가 없는 자타가 공인하는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은 스스로 성인이라고 자처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선택에 불만을 가집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위선적으로 위인인척 하는 사람들보다는 죄인임을 솔직히 고백하는 사람들과 사귀고 싶은 것입니다. 관계는 믿음이 바탕이 되는데 솔직하지 못한 사람들과 무슨 온전한 관계가 되겠습니까?

 

클라인스가 쓴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Imposture phenomenon’ 이라고 하는 책입니다. 임파스쳐는 사기꾼이라는 뜻입니다. 사칭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가면형상(假面現象)”이란 뜻으로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대기업의 중역 가운데 70%가 이 병에 걸려있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못하면서 하는 척, 아는 것 없으면서 대단히 아는 것처럼, 알고 보면 이렇다 할 것이 아무것도 없고 부끄럽기 짝이 없으면서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남의 것, 남의 돈, 남의 지식 가지고 내 것인 양 착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프로이트는 이런 사람을 위선자’(Hypocrite)라고 말했고, 이렇게 거짓된 자아가 있는 한 진실하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는 한 누구를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받을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우리들 중 70%만이 가면을 쓰고 살아갈까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 것을 안 한 척, 슬프면서도 기쁜 척, 부족하면서도 많은 척, 혹은 그 반대로 많으면서도 없는 척 하며 살지 않습니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저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어느 정도는 자신 안에 선과 악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그래서 또 어느 정도는 위선적인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누구나가 다 죄를 짓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죄를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하게 고백할 수 있도록 겸손한 사람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겸손하다면 죄도 짓지 않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고 부끄러워 자신들의 몸을 가렸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하느님이 나타나자 나무 뒤로 숨었습니다. 이는 죄 자체가 솔직하지 못하게 만들고, 그래서 위선적이 되며, 그것이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게 되고, 그렇게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죄책감을 씻는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고해성사만한 것이 없다고 많은 심리학자들도 의견을 모읍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할까요? 그 고해성사 한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지는 않습니까? 어쩌면 주님께서 고해성사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는 하지만 더 완전해 지려면 모든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고백할 수 있는 겸손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것이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몸을 하나도 가리지 않았어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상태였을 것입니다. 자캐오가 나무 위로 올라갔다는 의미는 이미 자신의 죄를 만 천하에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원하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고, 그런 면에서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깨끗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께서 거하시지 않으면 참 구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자캐오처럼 솔직하고 겸손한 사람의 마음에 거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나의 모든 죄를 하나도 가림 없이 온 천하에 고백하고 다닐 수 있는 겸손함을 갖던가, 굳이 위선적으로 아닌 척 하고 다닐 필요가 없도록 감출 필요가 있는 죄는 하나도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모든 사람들에게 고백할 수 없는 죄는 짓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죄를 지었다면 자신을 인정하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 솔직해 지는 두 방법을 병행하는 것이 완덕에 이르는 가장 빠른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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