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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소명을 깨달으면 운명이 바뀝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0 조회수764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


복음: 마태오 12,46-50






성전에 봉헌되는 동정녀


기를란다요(Ghirlandaio, Domenico) 작, (1486-1490),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 "소명을 깨달으면 운명이 바뀝니다." >

           인생이란 기차를 타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한 사람이 표를 끊고 기차에 올라탔습니다. 자기 좌석 번호를 찾아 자리에 앉았습니다. 앞좌석에는 이미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안녕하세요. 어디까지 가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러면 어디서부터 오시는 거예요?”라고 묻습니다. 역시 이번에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글쎄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합니다. 마지막으로 또 묻습니다. “그러면 이 기차는 왜 타고 계신 건가요?” “...”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은 물론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기차를 타고 가는 사람들 중엔 자신들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또 나의 삶의 의미와 목적, 혹은 소명이 무엇인지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얼마 전 평화방송에서 멕시코에서 선교하시는 최강 스테파노 신부님이 소명을 깨달으면 운명이 바뀝니다.”라는 제목으로 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멕시코 가장 가난한 지역에 가서 대단한 선교활동을 하고 계셨습니다. 40도가 넘는 곳에서 냉담자 회두를 위해 길거리에서도 미사를 드리고 많은 가정을 방문하고 또 주일에는 몸이 땀으로 흠뻑 젖으면서도 하루에 8대의 미사를 봉헌한다고 하였습니다. 미사 한 대만 주례를 해도 피곤이 밀려오는 저로서는 정말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자신의 일만 생각하다가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사랑이 많으신 분이 얼마나 저를 섭섭하게 생각했을지 부끄러워졌습니다.

이렇게 열성을 다하는 이면에는 그 분이 사랑에 대한 참 소명을 깨달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중국에서 1년 남짓 선교를 할 때였는데 그 때는 한국 사람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당신 혼자만 매일 벽을 보며 미사를 드려야 했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미사 드릴 때 벽이 응답을 할 정도로 너무나 외로워서 죽을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한 번은 산책하면서 이문세씨의 옛 사랑이란 노래를 듣다가 자신의 처지와 너무 비슷하여 너무 슬퍼서 집에 돌아와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가슴을 찔렀던 그 가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남들도 모르게 서성이다 울었지 지나온 일들이 가슴에 사무쳐 ... 누가 물어도 아플 것 같지 않던 지나온 내 모습 모두 거짓이야 ... 사랑이란 게 지겨울 때가 있지. 내 맘에 고독이 너무 흘러 넘쳐...”

그러면서 느낀 것은 사랑하지 못하는 고통보다 더 큰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사랑의 소명, 그것을 느끼니 삶이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신부님께 하느님께서 참으로 귀한 경험을 하게 해 주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참으로 하느님의 뜻, 부르심, 혹은 성소를 느낀다는 것은 삶을 바꾸게 합니다.

 

오늘은 요아킴과 안나께서 나이 들어 얻은 딸을 성전에 봉헌한 날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은 어려서부터 성전에서 자라셨다고 합니다. 봉헌이란 말은 자기 것을 포기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것을 포기하는 이유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훌륭한 분들은 봉헌할 줄 아는 분들이었습니다. 봉헌하시는 분들은 소명을 깨달은 분들입니다.

성모님 또한 아드님을 성전에 봉헌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뜻이 더 중요하여 구원자라는 소명에 당신 개인적인 뜻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께서 아드님을 봉헌하실 때 예언자 시메온에게 당신의 영혼은 칼에 찔리듯 아플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장차 인류 구원을 위한 소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세상의 반대 받는 표적이 되겠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요아킴과 안나가 성모님을 봉헌하는 것도 성모님의 소명을 위해 당신들의 부모로서의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크신 분들은 당신들의 소명이 무엇인지 명확히 아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총알택시를 타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택시답지 않게 매우 천천히 돌아다니는 택시를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왜 이들의 속도가 차이가 나는 것일까요? 총알택시는 손님이 있어 목적지를 명확히 알기 때문이고, 빈 택시는 목적지가 없기 때문에 어슬렁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소명을 깨달아야 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성모님도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기까지는 당신의 소명을 온전히 알고 있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엄청난 소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이것이 성모님께서 당신의 소명을 끊임없이 묵상해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들도 끊임없이 하느님께서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신 의미가 무엇이고 나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는지 찾아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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