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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1 조회수789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For whoever does the will of my Father in heaven
is my brother and sister and mother.
(Mt.12,50)


제1독서 즈카 2,14-17
복음 마태 12,46-50

누군가가 여러분의 집을 찾아오려고 합니다. 그런데 길을 모르겠다면서 여러분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어봅니다. 이때 여러분은 어떠한 식으로 길을 가르쳐 주겠습니까? 당신의 집에서부터 시작해서 물어본 사람이 있는 위치까지 안내하겠습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있는 위치에서부터 시작해서 당신의 집까지 안내하겠습니까?

당연히 후자겠지요. 그래야 훨씬 길을 찾는데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내가 있는 위치부터 안내를 하면 상대방은 도저히 길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중심이 아닌 상대방이 중심이 되어야 할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언제나 내가 중심이 되려고만 합니다. 그 결과 원만한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지 못하고 갈등만을 부추길 뿐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도 언제나 당신 중심이 아니라, 구원의 대상인 우리 중심이셨습니다. 그래서 완전한 인간이 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시기도 하셨지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인간들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할까요?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하면서 과연 주님처럼 나 중심이 아닌 나의 이웃들을 중심에 놓고 살고 있습니까?

사실 자기중심이 아닌 삶을 살아갈 때 스스로 행복해지는 것은 물론 자신과 연관된 다른 사람들 역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즉, 행복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적인 성격이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중병에 걸리게 될 때는 모든 가족이 근심에 쌓이게 되지요. 또 아들이 좋은 대학에 합격하면 온 가족이 기뻐합니다.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행복할 경우 나의 행복감은 15.3% 증가한다고 하더군요. 결국 이웃이 행복하면 나 역시도 행복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웃은 상관없이 나만 행복하면 그만이라는 자기중심적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복되신 종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인 것입니다. 사실 성모님의 삶을 떠올려 보면 그렇게 부러워 보이는 삶은 아닙니다. 결혼도 하기 전에 성령에 의해 예수님을 잉태해서 파혼의 위기를 맞이하는 것을 시작으로 고통과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사랑하는 외아들의 죽음을 직접 목격하는 큰 아픔까지도 감싸 안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그러한 상황에서도 철저히 자기중심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자기중심의 삶을 사셨다면 도저히 견디기 힘든 삶이지요. 철저하게 하느님 중심이었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극복하셔서 하느님의 어머니, 우리들의 어머니가 되실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께 봉헌된 몸입니다. 그런데 과연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살고 있습니까?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고 말하면서 혹시 자기중심의 삶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께 봉헌된 성모님께서 철저히 하느님 중심으로 살면서 하느님 뜻에 맞게 사셨던 것처럼, 우리도 그 모습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그때 우리가 원하는 행복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오늘 일만 생각하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 이것이 현명한 사람의 방법이다.(세르반테스)



신학교 방문했다가 발견한 학생회의 순찰일지. 이렇게 신학생들이 삽니다.



인생이란 놀이(‘행복한 동행’ 중에서)
 

어느 잡지에서 본 글입니다. 감동적이라 그대로 옮겨 봅니다.

한 노인이 산책하는데 낯익은 동네 꼬마가 공터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다다가 물었다.

“엄마에게 혼났니? 왜 그렇게 우는 거야?”

그가 손수건으로 눈물 콧물을 닦아 주자 아이는 겨우 말문을 열었다.

“친구들이 아빠를 놀려요. 아빠는 다른 아저씨들처럼 돈을 많이 벌지 못하거든요. 우리 아빠는 실패한 사람이에요?”

노인은 대답 대신 아이 옆에 쪼그려 앉았다.

“할아버지랑 재밌는 놀이할까?”

그는 주위에 있는 모래를 모아 작은 더미를 만들었다. 그러고는 가는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모래 더미 가운데 깊숙이 꽂았다.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모래를 조금씩 가져가는 거야. 그러다 가운데 나뭇가지를 쓰러뜨리면 지는 거지.”

그는 처음부터 반 가까운 모래를 가져갔고 그 모습을 본 아이는 약간의 모래만 가져갔다. 다음번에도 그는 많은 양의 모래를 가져가려다 나뭇가지를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아이는 까르르 웃으며 노인을 놀렸다.

“할아버지 바보네요. 그렇게 많이 가져가려고 하니까 나뭇가지가 쓰러지잖아요.”

그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인생은 말이다. 누가 모래를 많이 모으는지가 아니라, 누가 쓰러지지 않는지 겨루는 놀이란다. 네 아버지도 마찬가지야.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진 것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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