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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잊혀진 기억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2 조회수774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33주간 금요일


<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복음: 루카 19,45-48





성전 정화


엘 그레코 작, (1600), 런던 국립미술관


     < 잊혀진 기억 >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까치 한 마리를 보고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저게 뭐냐?”

까치네요, 아버지.”

, 그렇구나~”

잠시 후 아버지는 다시 아들에게 묻습니다.

아들아, 저게 뭐지?”

까치라구요~”

, 그렇구나~”

잠시 후 아버지는 아들에게 또 물었습니다.

아들아, 저게 뭐지?”

까치라니까요! 아 정말 왜 자꾸 그러세요!”

, 그렇구나..”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가 말없이 아버지의 낡은 일기장을 들고 나와 아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오래된 아버지의 일기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은 우리 아이가 세 살이 되는 날이다. 아침에 까치 한 마리가 창가에 날아와 앉았다. 어린 아들은 저게 뭐야?’ 하고 나에게 물었다. 나는 까치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런데 아들은 연거푸 23번을 똑같이 물었다. 나는 귀여운 아들을 안아주며 다정하게 똑같이 대답해 주면서도 즐거웠다. 아들이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가지는 것에 감사했고 아들에게 사랑을 준다는 게 즐거웠다.”

 

며칠 전 본당 수녀님들과 함께 스파게티를 먹으러 갔습니다. 그 때 수녀님들이 아시는 분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소경이신데 스파게티를 포크로 잘 돌려 말아서 숟가락으로 바쳐 먹는 내내 하나도 흘리지 않고 정갈하게 식사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그 분이 식사 하는 것만 보면 눈이 안 보이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 분은 옷도 매우 단정하게 입으시고 모든 행동에 있어서도 눈이 잘 보이는 사람보다 잘 정돈되어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눈이 안 보이는 분이 눈이 보이는 사람처럼 식사를 할 수 있을까요? 그 분은 처음에는 눈이 잘 보였지만 차차 안 좋아지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그 분이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이유는 음식을 먹을 때와 행동 하나하나를 할 때 과거의 기억들을 되살려서 행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포크를 몇 바퀴쯤 돌려야 스파게티가 다 말릴 것이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옷을 어떻게 입어야 단정한지를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으로 그려보며 그대로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혹은 누군가가 옆에서 계속 가르쳐 주었을 것입니다. 이런 기억이 없다면 눈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그렇게 완벽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살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 안에 있는 기억이나, 적어도 다른 이에게서 배운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위의 이야기에서도 아버지가 까치를 몰라 그것이 무엇이냐고 계속 물을 때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고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기억해 냈었다면 아버지에게 소리 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조용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어가며 나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이 한 명의 자녀로서 인륜을 저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잊은 기억들을 되찾아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모르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합니다.

 

우리도 하느님 곁에 있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 오기 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그 분의 품에 있을 때 느꼈던 그 사랑을 기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 없는 사람처럼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인륜을 저버리지 않고 하느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기억을 되찾아줄 누군가를 찾아야합니다. 물론 교회도 있고 성경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잃었던 옛 기억을 되찾기 위해 그 분을 만나는 시간을 기도라고 부릅니다. 그렇게 기도가 이루어지는 우리는 하나의 성전인 것입니다.

 

성전이란 바로 다시 하느님의 품에 안겨 그 분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 내는 장소입니다. 곧 그 분을 만나는 장소이고 기도하는 곳인 것입니다. 그러나 유태인들은 그 기도하는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내 마음도 조용히 안으로 들어가 하느님을 만나고 그 분의 사랑을 기억해내는 장소가 아닌,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있어 그 깊은 곳까지 들어갈 수 없는 상태라면 빨리 내 자신을 정화해야 합니다. 시끄러운 시장바닥에서 한 사람의 목소리를 찾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밤과 광야의 고요함으로 자신을 이끌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그래서 하느님 자녀로서 온전하게 살아가기도 불가능합니다.

 

저희 성당 한 초등학교 덩치 큰 아이가 복사를 서는데 너무 제대 위에서 부산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끝나고 나서 수녀님이 제대 위에서 좀 점잖게 있으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가 매우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다 보였어요?”

자신은 제대 위에 있으면서도, 게다가 덩치가 크면서도 자신이 움직이는 것을 제대 밑의 신자들이 하나도 보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끊임없이 그 분께서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 삶이 흐트러질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그 분이 나와 함께 계신 것을 잊지 않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렇게 그 분과 끊임없이 만나고 있는 내가 온전한 성전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예수님께서 채찍을 만드셔서 휘두르셨던 것처럼 강력한 의지로 내쫓아 버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들의 마음이 강도들의 소굴이 되지 않도록 오직 그분만을 모실 수 있는 작은 마구간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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