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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5 조회수784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12년 나해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랩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복음: 루카 21,1-4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 >

              오래 전 미국의 보스턴 시에 스트로사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큰 꿈이 있었지만 자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당시 거부인 사람 중에 바턴 씨라는 사람에게 2천불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담보는 없지만 일에 대한 꿈과 용기가 있으니 믿고 빌려주면 그 은혜는 잊지 않겠노라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바턴 씨의 주위 사람들은 경력이나 담보, 후원자도 없는 사람에게 돈을 꾸어 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바턴 씨는 왠지 그 청년의 용기가 마음에 들어 모험을 한다는 생각으로 2천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스트로사는 얼마 되지 않아 정말 빌린 돈을 모두 갚았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습니다. 갑작스레 닥친 대공황에 바턴 씨는 대비를 못해 파산 직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스트로사는 바턴 씨를 찾아가 빚진 돈 75천불을 갚아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바턴씨는 깜짝 놀라 자네가 가져갔던 돈은 10년 전에 다 갚았는데 자네가 왜 내 빚을 갚는단 말인가?”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스트로사는 분명히 빚진 돈 2천불은 옛날에 갚았지만 회장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는 평생 갚지를 못합니다. 그때에 2천불로 장사를 해서 오늘날 이렇게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돈으로 갚을 수 없는 신뢰를 저에게 주셨지요. 회장님이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와 사랑은 영원히 갚을 수 없는 큰 빚입니다.”

담보도 없이 돈을 꾸어준 바턴이란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돈을 다 갚았음에도 큰 액수의 돈을 더 갚아준 스트로사라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일까요? 어쩌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이 둘 모두가 어리석어보이지 않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리석은 과부를 칭찬하십니다. 정말 어리석게도 자신의 생활비 전부를 헌금함에 넣습니다. 사람들은 그건 하느님이 입에 풀칠이라도 하라고 주신 돈인데 그걸 다시 헌금함에 넣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며 나무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과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네 맞아요. 어리석은 짓일 수 있죠. 제가 굶게 생겼으니까요. 참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저보다 더 어리석은 분이 계신데 어쩌겠습니까? 그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당신 외아드님을 우리 죄의 희생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 누가 개나 고양이를 위해 자기 외아들을 희생 제물로 바치겠습니까? 인간은 개나 고양이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인간을 만드신 분입니다. 개나 고양이와 인간의 사이보다 인간과 하느님의 거리가 더 멀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당신 아드님을 주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어리석어도 그 분보다는 덜 어리석을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갚아드리려 해도 그 분께 온전히 보답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스트로사는 2천불만 갚으면 그만이었습니다. 우리도 나름대로 봉사를 드린다는 것으로 만족해하기도 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대학 다닐 때, 청년회, 성가대, 교리교사, 레지오 등 청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만큼 하는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이젠 하느님께 내가 무언가 더 해 드리고 있다고 착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의 봉헌이 그러했을 것입니다. 과부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봉헌하기에 주님께 다른 이들보다 충분히 보답해 드린다고 기고만장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많은 보답을 하더라도 그분께 충분히 보답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스트로사가 2천불이 없었으면 어떤 돈도 벌 수 없었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들은 그 분께서 주신 것이고 목숨까지도 원하신다면 당연히 내어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봉헌하는 금액과 봉사하는 시간을 가지고 주님 앞에서 무언가 해 드린답시고 고개를 뻣뻣이 들 수 있겠습니까?

 

스트로사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세계 제1의 철강 왕으로 미국 재계를 주름잡은 카네기(1835-1919)는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일찍 결혼한 그는 가족과 홀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기 위해 사업에 최선을 다했으나 급기야 파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온 식구가 길바닥으로 나 앉게 되었습니다. 곤궁에 처한 카네기는 마지막 수단으로 모험과 불안이 도사리고 있는 미지의 땅 미국으로 이민을 가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러나 갈 여비가 없었습니다. 남은 돈과 어머니가 지니고 있던 낡은 금반지, 아내에게 결혼 선물로 준 목걸이를 다 팔아 긁어모아 보았지만 역시 부족했습니다. 이때 어머니의 친구 되시는 핸드슨 부인으로부터 기쁜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헨드슨 부인이 20파운드를 선뜻 빌려주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언제 돌려받는다는 보장도 없이 멀리 낯선 땅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을 믿고 빌려 준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빌려간 돈은 이 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카네기 가족은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고생을 참아가며 닥치는 대로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루에 꼭 50센트씩 핸드슨 부인의 돈을 갚기 위해 저축하였습니다.

어느덧 어렵게 모은 그 돈이 20파운드와 맞먹는 200달러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빚을 갚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카네기 가족은 200달러를 송금 수표로 바꾼 다음 파티를 벌였습니다. “이제 빚을 갚고 자유롭게 되었다.”라고 서로 축하해 주며 그간의 고생을 위로했습니다.

이때 카네기는 상기된 얼굴로 가족 앞에 서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빚은 갚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은 은혜는 영원히 갚지 못합니다.”

 

적어도 스트로사나 카네기, 혹은 어리석은 과부처럼 남들이 보기에 어리석게 봉헌한다고 하더라도 주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는 항상 부족하여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읍시다. 그래야 봉헌하고 봉사하면서도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누가 성체나 죄의 용서, 혹은 영원한 생명을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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