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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6 조회수867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I tell you truly,
this poor widow put in more than all the rest;
for those others have all made offerings
from their surplus wealth, but she, from her poverty,
has offered her whole livelihood.
(Lk.21,3-4)


제1독서 묵시 14,1-3.4ㄴ-5
복음 루카 21,1-4

전에 본당신부로 있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당시에 교육관 부지 마련 때문에 기금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지요. 적은 돈이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도 많았고 어떻게 하면 기금을 하루 빨리 모을 수 있을까를 고민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고민을 들었던 어떤 형제님께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신부님, 본당 사정이 요즘 그렇게 좋지 않지요? 그래서 제가 복권을 샀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면 전액 모두 본당 건축기금에 봉헌하겠습니다.”

농으로 하신 말씀이겠지만, 말씀만이라도 고맙더군요. 그런데 문득 정말로 복권에 당첨되시면 전액 모두를 봉헌하실까 라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런 말씀을 드렸지요.

“이렇게 복권을 사시다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당첨되실 거예요. 그러니 미리 앞당겨서 봉헌을 먼저 해주시면 어때요?”

이 형제님께서는 다음부터는 복권에 당첨되면 본당 건축기금으로 봉헌하시겠다는 말씀을 하시지 않더군요.

정말로 남을 돕고 또 봉헌을 하고자 한다면, 당첨되지 않아도 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도 그렇게 남을 돕고 봉헌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건들을 항상 걸고 있는 우리들이지요. 그 조건들 때문에 마음에서 외치고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조건에 만족되어야 하겠다면서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말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과 이러한 조건으로 타협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채워줘야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다는 조건들……. 그러나 주님은 타협의 대상이 아닌, 사랑의 대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타협하려는 순간, 주님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그녀는 아주 적은 예물을 봉헌했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보이는 예물의 양을 보시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마음에 담겨있는 봉헌의 크기를 보십니다. 그래서 그녀가 어떻게 봉헌을 하고 있는 지를 알아채신 것이지요. 그래서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을 봉헌하는 사람들보다,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 모두를 봉헌한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과부는 조건이 없을까요? 지금 가난하기 때문에 또한 생활비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경제적인 조건들이 채워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바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조건이 먼저 채워지고 봉헌하겠다는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봉헌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적지만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먼저 바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봉헌을 생각해보세요. 혹시 내가 원하는 조건이 먼저 채워져야 봉헌하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또 주님께서 정말로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것을 굳게 믿는다면 먼저 봉헌하십시오. 주님께서는 더 큰 사랑으로 분명히 갚아 주실 것입니다.

 

항구에 있는 배는 안전하다. 하지만 배를 만든 목적은 항구에 정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다(그레이스 호퍼).



성소후원회 모집 미사다녀왔습니다. 수고해주신 은행동성소후원회 감사합니다.



방에 들어온 벌을 보면서...
 

언젠가 제 방의 창문에서 벌 한 마리가 윙윙 거리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깜짝 놀랐지요. 웬 벌인가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곧바로 창문의 열린 틈 사이로 벌이 들어왔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벌이 계속해서 필사적으로 유리창에 몸을 부딪칩니다. 아마도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바로 옆에 자신이 들어온 열린 창틈을 보지 못하기에 계속 유리창에 몸을 부딪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벌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이 참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고자 하는 곳만 바라볼 뿐, 겁에 질려서 열린 창문 찾기를 잊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나갈 수 없는 유리창에 몸을 계속해서 부딪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밖으로 나가기를 원한다면 열린 창문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 역시 행복의 나라인 하느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찾고 그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엉뚱한 곳, 예를 들어 물질적인 것만을 만족시킬 수 있는 곳에만 있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계속 막혀 있는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는 어리석은 벌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지 않을 수 있도록 오늘도 힘차게 생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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