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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진정 부자인가? -자발적 가난, 가난을 사랑하기- 11.26. 월,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6 조회수580 추천수4 반대(0) 신고

2012.11.26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요한 묵14,1-3.4ㄴ-5 루카21,1-4

 

 

 

 

 



누가 진정 부자인가?

 

-자발적 가난, 가난을 사랑하기-

 

 

 

 

 


누가 진정 부자라고 생각합니까?

 

오늘 복음 중 풍족한 가운데 얼마씩을 넣은 부자들과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은 과부 중

누가 진정 부자라고 생각합니까?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진 가난한 과부가 진정 부자입니다.


주님 때문에 자발적 가난을 사는 이가,

가난을 사랑하는 이가 진정 부자입니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진복팔단에서 주님의 일성입니다.


가난의 답은 하느님입니다.


가난을 통해 주님을 소유함으로 행복이요

최고의 보물인 주님을 소유할 때 저절로 자발적 가난의 선택입니다.

 


주님을 모셔야 가난의 불편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습니다.

주님 없는 가난은 사람을 망가뜨려 비참하게 하지만

주님과 함께 하는 가난은 내적으로 풍요롭게 합니다.

 


하느님 빠진 수도자들이라면 얼마나 가난하겠는지요.

그러나 하느님과 함께 함으로

텅 빈 충만의 부요한 삶을 사는 우리 수도자들이요 믿는 이들입니다.


그러니 이런 주님을 맛본 사람은

저절로 자발적 가난이요 가난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주님을 목자로 모심이 참 행복이요 부자임을 알려 줍니다.


가난한 과부를 묵상하며 즉각 연상된 것이

나뭇잎, 열매들 다 떠나보내고 본질로 서있는

수도원 농장 가난한 겨울 배나무들이었습니다.

 


복음의 가난한 과부가 꼭 가난한 겨울나무들을 닮았습니다.

얼핏 보면 가난한 겨울나무들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푸른 하늘 배경으로 가득한 텅 빈 충만의 부유한 겨울나무들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게 가난이 부요임을 보여주는 역설적 진리입니다.

 


자발적 가난은 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탐욕에 기초한 물신주의

자본주의의 수렁에서 구출될 수 있는 유일한 수단도 자발적 가난입니다.


소유의 종 되어

자기 존재를 잊고 헛되이 살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많겠는지요.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도 닦기 힘들다는 말은 영원한 진리입니다.

적당한 가난이 깨어 하느님을 찾게 합니다.

재물과 하느님을 함께 섬길 수는 없습니다.


자발적 가난을 택할 때 소유의 삶에서 충만한 존재의 삶으로 전환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아무리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자발적 가난의 삶으로 주님을 만날 때 알게 되는

참 나의 존재요 신원입니다.


하여 참 행복도, 자유도 주님을 만남으로

참 나의 충만한 존재를 살 때 비로소 가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오늘 과부가 이런 삶을 추구하는 우리 수도자들의 모범입니다.

 

가난한 과부와 같은 이들이 진정 성인입니다.


이런 이들에겐 지금 여기가 시온산입니다.

 


오늘 요한 묵시록은 진정 믿는 이들의 미래입니다.

아니 이 미래를 지금 여기서 앞당겨 사는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십사만사천명의 이마에 새겨져 있는 주님의 이름처럼

우리 이마에도 새겨져 있는 주님의 이름과 더불어

우리 신원을 확인하는 미사시간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미사에 참석하여 주님을 모시는 우리의 내적상태를 말해 줍니다.

이 거룩한 천상잔치의 미사시간,

속량된 천상성인들과 함께 새로운 노래를 부르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우리들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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