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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죽음의 공포 앞에서 부인을 누이라고 말한 아브람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7 조회수558 추천수2 반대(0)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아브람이 주님의 부르심으로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주님께서 보여 줄 땅으로 떠났는데 그 땅에 기근이 들어서 이집트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자신의 부인인 사라이에게

누이라고 하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집트인들이 사라이의 아름다움을 보고 남편인 자신을

죽이고 사라이를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결국 이집트의 파라오는 사라이를 데려다 아내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왜 하느님께서는 파라오와 그 집안에 여러가지 큰 재앙을

내리셨는가?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파라오에게 어떤 잘못이 있는가?

아브람이 누이라고 해서 데려다 아내로 삼은 것이 큰 재앙을 맞을만큼

큰 잘못인가? 오히려 부인을 누이라고 한 아브람이 더 큰 잘못을 한 것은

아닌가? 그런데 왜 주님은 아브람에게는 한 말씀도 하시지 않는걸까?

 

이러한 질문의 묵상을 창세기 3장을 통하여 해 보았습니다.

창세기 3장을 묵상해 보면 아담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서 먹고 자신에게도

준 그 실과를 먹은 후에 하느님께서 당신이 따 먹지 말라고 명령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따 먹었느냐고 물으시자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당신께서 저와 함께 살라고 주신 여자가 그 나무 열매를 저에게 주기에

제가 먹었습니다."(창세 3,12)

이 구절을 묵상하고 아담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고 나니 아브람의 마음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담의 진술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진술이 사실이라해도 죄는 자신이

지은 것입니다.
누구 때문에 지은 죄라 해서 그 죄가 가벼워지거나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아담은 이렇게 말했을까요?

 

이 아담의 현주소가 우리들의 현주소임을 성경은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 안에는 아담처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아담은 선악과를 먹은 후에야

기억했던 모양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죄를 짓고 난 후에 비로소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7)

 

아담은 하와가 따 준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느님께서 하신 말씀이 선명하게

기억났을 것입니다. "그것을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바로 이 죽음에 대한 공포입니다.

 

자신이 하느님의 말씀을 어겼으니 분명 하느님께서 자신을 죽이실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부모님께서 하지 말라는 짓을 하면

이와 같은 마음이 들기 때문입니다. "아, 난 이제 죽었어!"

그런데 어느 부모님께서 자식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죽이는 부모가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 안에는 자신도 모르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는가 봅니다.

그 죽음의 공포 앞에서 아담이 하와에게 그 원인을 돌렸듯이 아브람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 앞에서 부인인 사라이를 누이라고

하라고 부탁하는 장면으로 묵상을 해 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이러한 나약함을 누구보다도 아시는 분이셨기에

아브람을 나무라지 않으신 것은 아닐까 하는 묵상입니다. 그러면 왜

파라오와 그의 집안에는 여러가지 큰 재앙을 내리셨을까?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파라오는 사라이를 첫 번째 부인으로 맞아

들인 것은 아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큰 민족의

사람도 아닌 여인을 아내로 맞아 들일 이유가 없을 뿐만 아니라 아내로

맞아들인 이유가 단지 사라이가 매우 아름다웠다는 사실에서 그렇게

묵상한 내용입니다.

 

파라오는 아마 아름다운 여인은 그가 누구든 아내로 맞이한 사람인

모양입니다. 아브람이 걱정하고 있던 내용이 사실인 모양입니다.

그 아름다운 여인에게 남편이 있으면 그 남편을 죽이고서라도 그

여인을 아내로 빼앗은 모양입니다.

 

아브람이 아무런 정보 없이 그런 걱정을 할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묵상으로 볼 때에 죽음 앞에서 부인을 누이라고 하자고

말한 아브람의 죄보다 부인이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여인만 보면

모조리 부인으로 맞이하는 파라오의 죄를 엄하게 다스리시는

장면으로 묵상한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아브람이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겪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접 개입하셔서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는

장면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이 자신의 죄로 인해 겪어야 하는

어려움 앞에서 나 몰라라 하시는 분이 아니시라 그 사건에 몸소

개입하셔서 우리들을 행복의 길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묵상을 정리하면 여러가지 큰 재앙을 받은 파라오도

어떤 의미에서는 축복을 받은 사람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재앙으로 인해 더 이상 큰 죄를 지을 기회를 면했기에 그렇습니다.

곧 주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사람에게 은총이고 축복이 됨을

고백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멘.

 

주님의 가없는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묵상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시며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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