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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8 조회수853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You will be hated by all because of my name,
but not a hair on your head will be destroyed.
(Lk.21,17)


제1독서 묵시 15,1-4
복음 루카 21,12-19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 아픔이 도저히 참기 힘들 정도가 되어서 병원에 갔습니다. 그리고 이 통증의 원인이 장염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통증의 원인을 알게 되면 나의 통증도 깔끔하게 사라질까요? 아닙니다. 여전히 배는 아플 것입니다. 이 통증을 없애는 것은 단순히 진단받는 것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지요. 그보다는 통증을 없애기 위해 처방된 약을 먹을 때에 비로소 아픈 통증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을 아는 것만으로 구원에 이를까요? 물론 모르는 것보다는 구원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겠지요. 그러나 주님을 알면서도 주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사실 주님의 뜻을 실천하려는 우리의 행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은 잠시도 가만히 있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교통체증에 갇혀 있었을 때를 떠올려 보십시오. 차 안에서의 답답함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까? ‘왜 이렇게 길을 막히는 거야?’를 연신 외치면서, 불안해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만히 있도록 우리는 창조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단지 나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의 몸은 주님의 뜻인 사랑을 실천하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그래서 우리 모두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을 따르는 것 자체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물질과 세속의 법칙만을 따르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미움과 상처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희망을 가지라고 오늘 복음을 통해서 분명하게 전해주십니다.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며 앞으로 나아갈 때,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약속해주십니다.

우리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놓여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을 살고 있는 인간의 세계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하느님 나라입니다. 만물이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 인간 역시 태어나고 죽는 자연의 법칙을 따르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인간의 세계가 아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하느님 나라에 맞춰져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세상의 눈이 아니라, 주님의 눈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주님의 뜻을 내 몸으로 실천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세상 사람들과 분리되는 것 같아도 분명한 주님의 뜻이라면 꿋꿋이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그리고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욕망은 생명의 절반이고, 무관심은 죽음의 절반이다(칼릴 지브란).



인천 주교좌 답동성당 내부.



나를 먼저 바라봅시다.
 

전에 타고 있었던 차는 연식이 좀 되는 낡은 중고차였습니다. 중고차는 운이 좋아야 좋은 차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요. 저는 그 운이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는지 잦은 고장이 나곤했습니다. 하지만 운전을 그다지 많이 하지 않기 때문에 수리를 하면서 잘 타고 다녔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게 짜증이 섞인 경적을 울리는 분을 만난 것이었지요. 사실 그 차는 정지선에서 출발할 때 다른 차들보다 가속하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그러다보니 신호가 바뀌었을 때 앞 차인 제가 꾸물댄다고 화를 내며 뒤에서 경적을 울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지요. 좋지 않은 차를 타고 다닌다고 무시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운전대만 잡으면 사람들이 왜 저렇게 변할까 라는 자조 섞인 비웃음을 날렸지요.

그러다가 며칠 뒤, 저는 사람들이 제 차를 보고서 왜 짜증을 냈었는지를 알았습니다. 글쎄 제가 아는 분이 이렇게 말씀해주시는 것입니다.

“신부님, 신부님 차에 깜빡이등이 들어오지 않아요.”

저는 좌우측 표시등을 늘 제대로 지켰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차 안에서 표시등이 켜졌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러나 문제는 차밖에는 그 표시등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러한 상태이다 보니 제 차 뒤를 쫓아오던 다른 차의 운전수들은 어떠했을까요? 표시등도 켜지 않은 채 좌회전, 우회전을 해 버리는 제가 짜증나겠지요.

바로 저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계속해서 사람들의 매너 없음을, 기다려주지 못함을 꾸짖고만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먼저 바라보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들에 대한 판단은 이렇게 큰 실수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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