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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고백
작성자강정봉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29 조회수346 추천수4 반대(0) 신고
 
* 예수님이 살아계실 때 마지막으로 구원하셨던 사람이며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우도에 대해 평소 많은 생각을 해보았으며, 그 생각을 독백소설 형식의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평신도인 제가 여기에 글을 올려도 되는지 모르지만, 서투른 글이나마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누었으면 하여 여기에 올려봅니다.



                                                                          고백

손과 발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은 이미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것인가, 이제는 오히려 감각이 무뎌지기 시작했다. 피를 너무 흘린 탓인지 정신이 멍하고 눈이 침침하다. 자꾸 눈이 감겨지며 깜빡깜빡 정신줄을 놓다가도 억지로 눈을 떠서 저 아래 사람들의 흐릿한 모습을 본다. 여기 저기 모여서서 우리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말없이 보고 있다가 가끔씩 내 옆 사람을 보고 뭐라고 외치기도 하고 안타까운 눈길을 보내기도 하는 저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쨌든 저 사람들에게 나는 아무 관심도 끌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그 사람들 너머 저 멀리 아래쪽으로 예루살렘 시내의 황토색 건물들이 어렴풋이보인다.
목이 심하게 마르다. , 포도주 한 모금만 마셨으면… 타서 갈라져 버린 입술을 축이려 하나 입 천장도, 혀도 모두 말라 붙어서 물기라곤 한 점도 없다. 침을 삼키려 해도 삼킬 침이 없다. 이상하게도 손과 발의 통증보다는 갈라 터진 입술과 혀의 통증이 떠 또렷하다. 이렇게 나의 짧은 생이 끝나는 것인가? 나는 비록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죄인이었고, 마침내 잡혀서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었지만 30년 전에는 나도 부모님과 이웃, 친척들의 축복속에 태어났다는 사실을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나의 행복은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끝났다. 부모님이 돌림병에 걸려 잇따라 돌아가신 후 자기들 살기 바빠서 나를 외면하는 친척들을 원망하기 보다는 나는 열 한살 때부터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며칠을 굶은 내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처음 훔친 빵 덩어리를 골목길에 앉아 눈물로 삼켰을 때 내 앞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크면서 나는 제대로 된 일을 해보려 했으나 배운 게 없고 가진 게 없는 나에게는 제대로 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어둠의 세계에 남게 된 나는 남보다 빠른 눈치와 손길 때문에 그럭저럭 남의 물건과 돈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 익숙해 졌고, 머리가 굵어 가면서는 더 대담해 져서 남을 해치는 강도질까지도 서슴치 않게 되었다. 쉽게 들어온 돈은 결국 쉽게 나갔으며 나의 삶은 점점 더 돌이킬 수 없는 구렁텅이로 서서히 빠져 갔다. 조금씩 느끼던 죄책감은 내게 냉정하기만 했던 세상의 모습 뒤로 점점 사라져 가 버렸다. 어차피 세상은 내가 굶는지 먹는지 아무런 관심도 가지지 않았으므로.
얼마 전부터 가끔씩 들리던 색다른 랍비의 이야기에 잠시 흥미를 가지기도 했으나, 죄인들을 유난히 가까이 한다는 그 사람의 이야기도 내게는 현실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들어 보면 아주 거룩한 사람인 듯 한데, 그런 사람이 나같은 죄인에게 신경을 쓸 리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세상의 상식으로는 그랬다. 지난 주엔가는 나를 평소에 오빠처럼 따랐던 창녀 미리암이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해 주던 랍비 - 이름이 예수라던가 하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한참동안 들었다. 그 사람은 다른 유다인 선생들처럼 바리사이들이나 귀족들과 어울리기 보다는 오히려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회피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며, 같이 다니는 제자라는 사람들도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라고 한단다.
하느님이라… 나같은 사람에게도 하느님이 관심을 가진단 말인가? 나도 유다인이지만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하느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가치였던 내게 회당에 가거나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미리암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그날 일을 나가지 못했다. 과연 내가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생전 처음으로 든 것이다.
다음에 그 선생이 근처에 오게 되면 한번 찾아가 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나 그 선생은 따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근처에 가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기억하고는 바로 포기해 버렸다.그 선생이 어느 날 어디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는 소문이 한번 퍼지면 새벽부터 자리를 잡지 않으면 먼 발치에서도 그 선생 얼굴 보기도 힘들다던데, 내가 뭘…
그런데 그 날 이후로는 이상하게 일을 나가서도 몸과 마음이 무거운 적이 많았으며 내게 돈을 도둑맞거나 빼앗긴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자주 하게되었다. 가능하면 부자들 것을 빼앗거나 훔치려 했지만 개중에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집세를 내야 할 돈인데 그걸 잃으면 온 식구가 길에 나앉아야 한다고 사정하던 추레한 아저씨의 모습이 갑자기 또렷하게 떠오르는 가 하면, 죽어가는 어린 아들을 의사에게 보일 돈이라며 내 다리를 붙들고 절규하던 한 여인의 찌든 얼굴이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내가 저 밑바닥까지 밀려내려갔을 때 세상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앉았다는 기억을 되살리며 그 당시에는 냉정히 발길을 돌리곤 했는데
그 사람들은 돈을 잃고 나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리고 그 아저씨의 가족과 그 여인의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전에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 생각들로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지곤 했으며, 그럴 때마다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던 어린 날의 내 처진 어깨가 생각이 났다.이제는 정말 이 짓도 더 못해 먹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 사정을 어렴풋이 짐작하는 우리 동네 벤야민 아저씨의 목공소에서 그냥 조수 일이나 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정말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나는 열흘 전, 이젠 정말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어느 여유있어 보이는 집의 닫힌 창문을 익숙한 솜씨로 비틀어 열고 몰래 들어갔다.어둠 속에서 주인이 거처하는 듯 한 방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돈이나 귀금속이 들어있을만한 곳을 더듬어 찾고 있는데, 갑자기 주인이 깨어나 ‘누구요?’ 하고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통 때 같았으면 가지고 다니던 단검을 빼서 주인의 목에 대고 위협을 했을 터인데 얼마 전부터는 아예 무기를 가지고 다니지도 않던 터라, 나는 그대로 후다닥 창을 넘어 골목으로 뛰어 내렸다.
그러나 마침 순찰중이던 로마 군인 두명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순간 얼어붙은 나는 주인이 지르는 ‘강도야!’ 소리에 바로 칼을 빼어드는 군인들에게 꼼짝없이 잡히고 말았다. 부대로 잡혀간 후 이어진 며칠간의 취조 과정에서 내 죄의 상당부분이 밝혀지자 나는 그대로 사형 선고를 받고 만 것이다. 그 날 밤에 그 집에 들어가지만 않았으면, 벤야민 아저씨 집으로 그날 아주 옮겼다면나는 죽게 되지 않았을 텐데.내 삶이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이제 막 깨닫게 된 내게도 기회가 주어졌을텐데, 이제는 모두 다 허사가 되었다. 보잘 것 없는 삶이지만 내 곁에서 그래도 나를 알고 나에게 따듯이 대해 주었던 사람들 얼굴이 떠오른다. 미리암이나 벤야민 아저씨는 얼마 전에 어렵게 어렵게 내가 갇혀 있던 곳에 찾아와 내 손을 잡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었는데
무거운 고개를 돌려 내 오른쪽에 매달린 사내를 보았다. 내가 아까 경황중에 듣기는 이 사람이 바로 그 예수라는 선생이라는 것이었다. 도대체 왜 랍비가 이렇게 잡혀와서 나처럼 십자가에 매달렸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지만, 막연히 그 사람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은 나나 그 옆의 또다른 사형수처럼 고통에 울부짖지도 않았고, 온 몸이 채찍자국인 피투성이 몸으로 말없이 매달려 있었다. 나도 잡히고 나서 수없이 매를 맞기도 했지만 저 사람처럼 끔찍할 정도는 아니었다. 병사들이나 구경꾼들이 밑에서 조롱의 말을 퍼부어도 조용히 있는 그 사람은 정말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우리는 모두 얼마 후 숨을 거두게 되겠지. 그 후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처럼 죄를 많이 지은 인간은 분명히 무서운 벌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저 사람은? 틈틈이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어린이들을 좋아하고, 죄를 짓거나 버림받아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 사람들에게 따뜻한 손길을 내민 사람이었다는데, 그런 사람이 나와 똑같이 비참한 죽음을 겪는 것이다. 수많은 기적들도 행했다는 저 사람이 왜 저렇게 되었을까? 미리암은 적어도 내게는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데, 그녀는 베짜타 못가에서 38년동안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저 선생의 한 마디로 일어나 걷는 광경을 자기 눈으로 직접 봤다고 하지 않았나? 얼마 전에는 베다니아에서 죽은 사람까지 살렸다는 사람이 왜 저렇게
그의 옆쪽에 우리처럼 매달려 있던 또 하나의 사형수가 갑자기 그 선생에게 외쳤다.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그는 분명히 빈정대고 있었다. 나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그러나 순간 그 죄수에 대한 맹렬한 적의가 나도 모르게 솟아나왔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왠지 그 선생은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그 죄수를 꾸짖었지만, 내가 하느님을 거론하다니나 스스로 놀라서 말을 멈추었다. 순간, 선생이 힘없이 쳐졌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 보았다.
그 눈! 정말이지 나는 그런 눈을 본 적이 없었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 머리의 가시관이 흘러내려 반쯤 가려진 사이로 나를 쳐다보는 그 눈은 분명 절망의 끝에 있는 눈이 아니었다. 지극히 깊고 평화로운 푸른 눈이었다. 세상에! 이것이 저렇게 피투성이인채로 끔찍한 고통을 겪고, 처절한 죽음을 앞둔 사람의 눈이란 말인가! 미리암의 말에 의하면 죄하고는 정말로 거리가 먼 사람이며, 그분의 주장대로 하느님의 아들일지도 모른다는 그 분. 푸르른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밑바닥 가장 비밀스런 부분까지 들여다 보는 눈길이었다.
바로 순간, 그렇지 않아도 흐려진 눈이 흐려졌다. 그리고는 말라붙은 뺨으로줄기 눈물이 굴러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방울도 물기가 남아있을 같던 내  몸에 흘릴 눈물이 있었단 말인가? 그리고 갑자기 온갖 서러움이 마치 해일처럼 밀려왔다. 그분의 눈은, 바로 내가 어릴 적 골목에서 놀다가 넘어져 까 무릎으로 울면서 집에 뛰어갔을 때 나를 품에 안으며 내려다보던 어머니의 눈이었다. 안타까움과 깊이모를 사랑으로가득 찬...  계속 흐르는 눈물을 놔둔채로 나는 중얼거렸다.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 분은 그 깊은 눈으로 나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나직히 말했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낙원. 나에게는 뜻조차 생소한 단어였다. 내가 살아온 세상은 이 꿈같은 단어와는 전혀 거리가 먼 곳이었다. 그런 나에게, 정말 한 푼 어치의 가치도 없는 내 생명에게 그 분은 당신과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먼 훗날도 아니고 바로 오늘 말이다. 나는 정신이 더 몽롱해 지는 것을 느꼈다. 행복감인지, 아니면 이제 생명의 마지막 한 모금이 내 육신을 빠져 나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지만 참으로 오랜만에 편안한 숨을 내 쉬는 내 귀에 그 분의 말씀이 아련히 들려왔다. 이제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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