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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30 조회수737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1월 30일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



Come after me,
and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Mt.4,19)


제1독서 로마 10,9-18
복음 마태 4,18-22

휴대전화를 통해서 이상한 전화를 많이 받습니다. 대출 관련 전화, 보험 가입 전화, 스마트폰 변경에 관한 전화 등등……. “안녕하십니까?”라고 시작되는 밝은 목소리이지만, 곧이어 말하는 상품 선전에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은 참 빠릅니다. 내 머릿속에는 ‘전화를 끊어야 하는데, 더 들을 필요 없는데…….’라는 말이 계속 떠오르지만, 그 빠른 말을 끊지 못해서 거의 끝까지 듣다가 겨우 끊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지난번에 어떤 신부가 통화하는 내용을 듣고는 저 역시 그렇게 따라하게 되었습니다. 그 신부는 상업성 전화에 곧바로 이렇게 말하면서 끊더군요.

“죄송합니다. 바쁩니다.”

하긴 어차피 제가 그 상품을 이용할 것도 아니면서 필요하지 않은 말을 계속 듣는 것, 분명히 그 사람이나 저에게 시간 낭비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짧은 통화로서 전화를 끊는다면 서로에게 이득이 되겠지요. 저는 전화를 빨리 끊어서 좋고, 상대방은 헛일 안 해도 되니까요.

짧은 말 한 마디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 망설입니다. 빠른 판단력을 통해서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망설이고 주저하는 안일한 행동으로 인해서 서로에게 아픔과 상처를 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특히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빠른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주님인지 아니면 세상인지를 분명하게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통해 참된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압니다. 문제는 지금 내 눈에 좋아 보이는 많은 유혹거리들이 세상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갈림길에서 망설이고 주저합니다.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그러나 주님께서는 지금 당장 선택하라고 하시고, 주저 없이 당신을 선택한 이들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십니다.

오늘 우리들은 안드레아 사도 축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안드레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그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습니다. 배운 것도 없었고, 또한 하느님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나를 따라오너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망설임 없이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따릅니다.

망설임이 없는 과감한 선택에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었음을 오늘 복음은 보여줍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주님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망설이지 말고 곧바로 해야 함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택은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배운 것도 없고 그다지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지만,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이 세상의 유혹들을 물리치고 곧바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지금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십시오. 과연 나의 믿음은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세상의 것에 대한 욕심은 버리고, 주님께 대한 믿음은 키울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역시 주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것은 어디에 서 있느냐가 아니라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이다(요한 볼프강 폰 쾨테).



어렸을 때부터 갖고 싶었던 세계문학전집. 40% 할인이라는 말에 1~10권 충동구매.
그래도 행복합니다. 이 행복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내 자신을 존중하십시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늙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얼굴에 있는 팔자주름을 비롯한 많은 주름으로 인해서 아마도 늙어 보인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다보니 늙어 보인다는 말이 큰 스트레스로 다가오더군요. 그렇게 늙지도 않았는데 늙어 보인다고 말하니까요. 그리고 저 스스로도 거울을 바라보면 좀 늙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떤 책에서 미국에서 있었던 한 실험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를 안 좋게 말하면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지 않던 사람들도 같은 말이 반복될수록 말한 그대로를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저는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늙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이제는 동안(童顔)이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제 늙어 보인다는 소리를 거의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젊고 힘이 넘쳐 보인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내 모습은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스스로의 노력과 긍정적인 마음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나를 존중해주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존중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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