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자신을 내어 주기 싫은 마음
작성자장이수 쪽지 캡슐 작성일2012-11-30 조회수403 추천수0 반대(0) 신고


[ 게시글 '동물적 본능' ]에 이어서 갑니다.

사람은 자신을 성전에 봉헌할 때, 자기를 버린다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를 버린다라고 말한다면 평생 거짓말쟁이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버리지도 못하면서도 버려야(비워야) 한다는 엉터리 가르침에서 결코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버려야(비워야) 한다는 자기 버림의 수련은 헛수고가 될 뿐입니다.엉뚱하게 수련을 한다면 진리에 나아갈 수가 없는 일입니다. 진리에 나아가려는 사람은 진리를 참되게 깨닫고자 한다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자신을 '성전에 바치는' 사람은 자신을 성전에다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버리\린다는게 아닙니다. 자신을 하느님께 비운다는 것이 아닙니다. 온전히 자신을 하느님의 도구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을 비우고자 하는 거짓말쟁이 상태에서 오롯이 먼저 벗어나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는 '성전의 봉헌'은 자신을 "내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비우고자 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앞서 떨쳐내어야 합니다. 하느님 성전에, 아버지께 성전에 봉헌하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내어 드리는 것이 진리에 다가가는 완덕이 될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버리겠다는 그 자애심 마저도 끊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도 성전에 봉헌되실 때에도, 엣님께서는 아버지(하느님)께 예수님 자신을 내어 드린 것이다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 드림으로써 "주님의 종"이 되신 것입니다.자신을 비워서 십자가에 봉헌하신 것이 아니라,자신을 사람들에게 내어 주심으로써 사람들은 하느님의 생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버림(비움)으로써 '무'에 이르는 불교식 경지의 같은 것들에 도달하였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자기 해탈의 경지을 도달하신 예수님이 아니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 있는 자신 >을 내어 주신 것이지 결코 자기 자신을 비우신게 아니다 하겠습니다. 비운다, 혹은 버린다는 것이 '하느님께 대한 겸손'이 아닙니다. 

자기를 버려서(비워서) 자신이 '신'(도사)가 되신 분이 아아니십니다. 한 인간으로써 수도를 잘 행하여 '신'(하느님)이 되어진 "신화된 인간"이 아니다는 뜻입니다.예수님께서는 그대로 있는 자신을 하느님께 내어 드렸으며 이로써 하느님(성부)과 일치하셨고 마침내 당신의 십자가로 자신을 사람들에게 "생명의 빵"(밥)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 자신을 버리지 않고,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자기 수도에만 전념하지 않았기에 이것은 가능한 일이 된 것입니다. 자신이 오롯이 자신으로 계셨기에 당신 자신을 먹어라고 내어 주실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성부께서 아드님을 내어 주셨듯이 성자께서는 아버지께 내어 주신 것입니다. 이를 '사랑의 합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합일'에서 성부와 성자께서 '일체' (삼위일체)가 되시는 것은 서로 "자신을 내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자신을 버리는게(비우는게) 아니고 자신을 내어 줄때, 성부와 성자께서 서로 완전하게 '한 하느님'으로 계신다 할 것입니다. 

우리도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성전에 봉헌하고, 그리고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십자가에 봉헌합니다.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하느님께 그리고 예수님께 일치하게 됩니다. 자신을 버리는(비우는)게 아니라, 자신을 내어 드림(바침)으로써 하느님의 은총에만 의탁하는 "주님의 종"이 되어질 것입니다.

사람은 하느님께 내어 드림으로써 하느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게 됩니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드리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과 일치할 수 없으며 하느님의 생명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혹자는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드림이 얼마나 큰 '도의 경지'인지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고 말할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자기 자신의 이기적인 속성 때문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기 싫은 것이, 바로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버린다고 하는 거짓말쟁이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자신을 내어 주면서 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생명의 좁은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의 길입니다.

자신을 성전에 바침은 자기를 하느님께 내어 드림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한다는 의지가 되고, 자기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 줌(십자가를 진다는 뜻)으로써 예수님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을 따름 > 됩니다. 만일 자신을 가짜 마리아에게 내어 주면 "탕녀의 지체"가 되어질 것입니다.

자기를 버려서 자기 힘으로 '탕녀의 지체'가 될 수는 있지만, 자신을 내어 드리지 (바침) 않고서는 결코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백성(자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예수님께 자신을 내어 드림으로써 예수님과 일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그분의 사랑으로' 내어 주게 됩니다. 성체성사적인 삶입니다

자신을 내어 주기 싫어시죠. 자신을 내어 주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단지 내어 주기가 싫기 때문일 뿐입니다. 자신을 버린 다음에 내어 주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비워야 한다(버려야 한다)는 거짓말쟁이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거짓말쟁이들은 예수님과 일치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과 일치하지 못하고 그래서 결국 '생명'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참된 진리에 이르게 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