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허물이 곧 내 허물
신학생 시절, 심리학 시험에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어떤 학생은 답안을 쓰는 대신 자신의 모습을 그
림으로 그려 제출했지요. 교수님한테 야단은 맞았지만 그래도 기
본 점수는 받았습니다. 반면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한 학생은 F학
점을 받아 재수강을 해야 했습니다. 답안지에 도대체 뭐라고 썼던
것일까요? 자신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사람이라고 은
근히 자랑을 했답니다. 심리학 교수는 "신부 될 놈이 아니라 무당
이 될 놈이 여긴 왜 왔어?" 하고 낙제시켜버렸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고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잘못 아는 경우가 50퍼센트도 넘는다
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남의 속을 잘 아는 듯이 착각을 하는
걸까요?
이를 심리학 용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바로 투사(projection)
때문입니다. 투사란 인간의 기본적인 방어기제로,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자신의 것으로 인정하기 두려울 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 안에 있는 좋지 않은 것과 대면하기
두렵고 또 인정하기 싫기에 내 바깥에 있다고 여기는 것이지요.
실제로는 자신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다 그
사람을 미워한다고 생각한다든지, 젊고 예쁜 여성과 사귀고 싶어
하는 중년 아저씨가 20대 아가씨와 재혼한 자기 친구를 몹시 비난
한다든지-----. 투사의 예는 매우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결점이 잘 보이는 것은 자신이 똑같이 결점을 가지
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눈에 욕심 많은 사람이 잘 보인다면 내가
욕심이 많은 것이고, 이기적인 사람이 잘 보인다면 내가 이기적인
것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들의 특정한 성향이나 행동에 대해 민감
하게 반응하고 지나치게 불편해한다면, 자신의 내면부터 살펴보
아야 합니다.
'마귀 콤플렉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하다 잠이 오는 것은
잠 마귀 때문이고, 남의 것에 욕심이 생기는 것은 탐욕 마귀 때문
이고, 사소한 일에 불같이 화가 나는 것은 분노 마귀 때문이고---.
귀에 걸면 귀고리,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모든 것에 마귀의 딱
지를 붙여버리는 것입니다.
탐욕과 분노, 증오처럼 좋지 않은 감정이 내 안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 마귀의 짓으로 돌려버리는 것이므로 마귀
컴플렉스도 투사입니다.
"내 탓이오"가 아니라 "네 탓이오" 혹은 "마귀 탓이오" 해버리고
나면 내게는 아무 책임이 없어집니다. 아주 쉽고 편한 방법이지요.
옛날 어느 나라에 제자 둘을 가르치는 스승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제자가 머리도 별로 좋지 않은데다 고집까지 세서 아
무리 타일러도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스승은 늘 골머리를 앓았지
요. 마귀 콤플렉스에 걸려서 마귀와의 전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
며 살아가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아무리 고쳐주려고
해도 막무가내인데다 사람들 안의 마귀를 좇는다고 설레발을 치고
다녀 동네가 다 시끄러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마귀를 쫓으러 다
니다보니 추종자까지 생겨 스승도 포기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지요. 스승의 꿈에 하느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애들 좀 잘 가르칠 수 없겠니?"
하느님의 꾸중에 스승은 물었습니다.
"걔네들한테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생
겼나요?"
"네 제자라는 것들이 이것도 마귀 짓, 저것도 마귀 짓, 마귀가
하지 않은 일도 마귀 짓이라고 떠들고 다녀서 마귀들이 천당 재판
소에 명예훼손으로 고소장을 접수했다."
우리는 남의 마음을 들여다볼 때 호기심과 흥미와 약간은 가학
적인 기분으로 요모조모 뜯어보기 좋아하면서 자신의 마음은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기 싫다고 보지 않으면 내적 성장이
없는 것은 물론 심리적 기형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싫고
불편하더라도 남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저 사람이 왜 저러지?" 하지 말고 "내가 왜 이럴까?"
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이 눈에 보이는 것은
바로 내 안에 그런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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