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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06 조회수789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2월 6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Everyone who listens to these words of mine
and acts on them
will be like a wise man who built his house on rock.
The rain fell, the floods came,
and the winds blew and buffeted the house.
But it did not collapse.
(Mt.7,24-25)
 

제1독서 이사 26,1-6
복음 마태 7,21.24-27

몇 년 전, 네 손가락의 피아니스트라는 말을 듣는 희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희아가 했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신부님, 세상 사람들이 왜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불행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지금의 희아로 태어나고 싶어요.”

희아와의 만남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사실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하는 사람이 세상에 과연 몇이나 될까요? 그런데 희아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최고의 나’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이며, 그녀가 가지고 있는 장애가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희아가 장애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성격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무조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어머니와 함께 했던 그 엄청난 노력의 결과였습니다. 이 노력들이 그녀에게 ‘기적의 피아니스트’라는 호칭을 듣게 해 주었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작은 문제 한두 가지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죽겠다, 못살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사람 곁에 있는 것은 그리 유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짜증도 나고, 이 사람이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합니다. 외적으로 드러나는 장애는 없지만 기쁘고 행복하게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면, 어쩌면 세상의 그 어떤 장애보다도 더 큰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몸이 불편한 장애보다 마음이 불편한 장애가 더 큰 장애입니다. 그런데 이런 장애들은 희아의 경우처럼 본인의 노력으로 충분히 치유가 되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반성해 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너무 많은 불평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 적은 노력을 하고 있는 나는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보다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느님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지금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셨음을 인정하고 감사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기뻐할 수 있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지금의 자리에서 행복할 수 있으며, 종국에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너무 적은 불평불만과 너무 많은 노력을 하는 나’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고독을 대면할 수 있는 용기다. 외로움을 속이지 않는 것이다(김난도).



희아가 제게 해 준 멋진 사인(signature)



우리의 목적지를 향해...
 

어떤 분에게 재미있는 유머 하나를 들었습니다.

차 안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급하게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 옆에 앉아 있는 분이 물었지요.

“뭐 잃어 버리셨어요?”

“응... 차표! 이거 큰일 났네.”

“할아버지. 차표는 이미 타실 때 차장이 확인했으니까, 내릴 때 차표가 없어도 상관없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께서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하네요.

“어허~~ 이봐 차표를 찾아야 내가 어디 가는지를 알지.”

할아버지의 건망증입니다. 자신이 갈 목적지를 잃어버린다는 것, 큰 낭패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우리의 목적지를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목적지 없이 시간 가는대로 대충대충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주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 우리를 잊어버리고 세상의 것들만 쫓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런 모습이 앞선 할아버지의 건망증과 뭐가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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