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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08 조회수685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Behold,
I am the handmaid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Lk.1,38)


제1독서 창세 3,9-15.20
제2독서 에페 1,3-6.11-12
복음 루카 1,26-38

‘오만가지 생각’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많이 쓰는 단어이지요. ‘많은 생각, 여러 가지 생각’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득 ‘오만’이 어떤 한자어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사전을 찾아보다가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오만’의 한자어는 ‘五萬’이었습니다. 다섯 ‘오’자와 일만 ‘만’자가 합쳐서 우리들이 숫자를 셀 때 쓰는 오만이라는 것이지요. 이보다도 더 큰 숫자들이 많을 텐데, 왜 오만일까요? 그러다가 어떤 책에서 이런 글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한 시간에 이천 가지를 생각하고, 하루 24시간 동안 대략 오만 가지의 생각을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옛 조상님들은 사람이 생각하는 그 가짓수가 5만 가지인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우리 선조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중요한 사실이 있더군요. 글쎄 이 오만 가지의 생각 중에서 85%가 부정적인 생각이고, 나머지 15%가 긍정적인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정신 차리지 않으면 자기 자신도 모르게 부정적인 생각에 빠질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는 실제로 부정적인 상황을 더 잘 기억한다고 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정신 차리지 않고 생활하면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되어 늘 입에서 부정적인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내 주변에 부정적인 사람이 있을 때, 상당히 힘듭니다. 함께 한다는 것에 커다란 지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긍정적인 사람이 있을 때에는 커다란 힘을 얻게 되며, 그를 통해 좀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모두 긍정적인 사람을 좋아하고 원하면서, 스스로는 왜 그런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정신을 차리지 않고 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신 줄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항상 우리를 좋은 쪽으로 이끌어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면서 주님의 뜻에 철저히 따라 살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우리들이 오늘 기념하는 성모님께서 그러한 삶을 보여주셨지요.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의 등장에 또한 전해 주는 깜짝 놀랄 메시지에 크게 흔들리지 않습니다. 대신 복음은 이렇게 전해 줍니다.

“곰곰이 생각하였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처음 겪는 일이라고 할 수 없다며 거부하시지도 않습니다. 그저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셨던 것입니다. 이는 곧 하느님께 대한 굳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 굳은 믿음으로 인해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그리고 세상의 관점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따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을 오늘 지내면서, 성모님의 모습을 깊이 묵상하고 그 삶을 본받아야겠습니다. 성모님께서 보여주셨던 믿음의 삶에 동참할 때, 우리 역시 성모님처럼 늘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잘 따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일은 결심한 대로 된다. 만일 당신이 ‘나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될 것이다!’라고 결심하면 당신은 정말로 그렇게 된다(J.휴위즈).


눈이 와도 너무 오네요. ㅠㅠ



주님 앞에 나아가는 진정한 고수가 되자
 

어떤 분으로부터 주식에 대한 자신의 경험 한 가지를 해 주셨습니다. 이분은 주변에 주식으로 큰 이득을 보았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자신도 과감하게 주식시장에 뛰어들었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자신이 투자한 주가만 항상 떨어지지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결국 하루가 다르게 쭉쭉 떨어지는 주식을 보면서 ‘피해를 최소한으로 만들자’라는 생각에 더 떨어지기 전에 팔았습니다. 하지만 얼마 뒤에 정말로 화가 나는 일은 자신이 헐값에 판 주식이 점점 오르더라는 것입니다.

단기적인 손익계산에 급급하기에, 지금 결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에 도저히 주식을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주식 고수들은 다르다고 합니다. 고수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서 의연하게 대처하고 또한 기다리면서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이 말을 들으면서 어쩌면 주님께 나아가는 우리 역시 이렇지 않을까 싶더군요. 물론 주식을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의 상황에 무조건 불평 불만할 것이 아니라, 먼 미래를 바라보는 주님께 대한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보다는 더 큰 결과를 위한 준비 시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 앞에 나아가는데 진정한 고수. 그래서 지금의 어렵고 힘든 상황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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