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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의 여정 -광야, 길, 구원- 12.9.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2-12-09 조회수331 추천수5 반대(0) 신고

2012.12.9 대림 제2주일 (인권주일, 사회교리주간)

 

바룩5,1-9 필리1,4-6.8-11 루카3,1-6

 

 

 

 

 



구원의 여정

 

-광야, 길, 구원-

 

 

 

 

 



얼마 전 농민신문 한 면은 온통 고령화 시대를 맞이하여

노년의 고독과 외로움을 잘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특집기사였습니다.


온갖 좋은 조언이 다 들어있었습니다.

그러나 읽고 난 후로는 허탈감이 밀려들었습니다.

 


‘노년의 행복 자체만이 목적인가,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병이나 죽음은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마냥 행복한 노년은 아니지 않는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하는 생각들이 뒤를 이었습니다.

 


노년의 대책은 필요하고 다 좋은 데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음을

순간 발견했습니다.


바로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노년의 허무와 외로움, 죽음에 대한 근본대책은 불가능합니다.

 

노년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예전엔 잘사는 웰빙이 열풍처럼 휩쓸었고 이어 잘 죽는 웰다잉,

또 요즘은 힐링(치유) 열풍이 주류입니다.

그런데 모두 인위적이고 이기적이며

웬지 허전하고 지엽적이며 미봉책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역시 하느님이 빠진 까닭입니다.


하느님께서 중심에 계시기에 웰빙, 웰다잉, 힐링입니다.

하느님 빠진 웰빙, 웰 다잉, 힐링은 가짜요 사기이니 속지 마십시오.


하느님을 항구히 신뢰하고 사랑할 때,

교회의 성사생활에 충실할 때 웰빙이요 웰 다잉이요 힐링입니다.

하느님께 가까이 갈 때 저절로 웰빙, 웰 다잉, 힐링입니다.

 


주님이 오심을 기다리는 은총의 대림시기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은 막연히 누구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주님이신 하느님을 기다립니다.

 


진정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기다림의 기쁨, 기다림의 행복을 주시는 분은 주님뿐입니다.


오늘 대림 제2주일

저는 ‘구원의 여정’에 대해 ‘광야-길-구원’으로 나눠 묵상했습니다.

 

 

 

 

 



첫째, 광야의 삶에 충실하십시오.

 


12월 초 수도원 배 밭의 텅 빈 풍경이 흡사 광야를 연상케 합니다.

광야가 상징하는바 참 깊습니다.

광야는 멀리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삶의 자리가 광야입니다.

외롭고 쓸쓸한 인생 자체가 광야입니다.


예전 수도자들은 하느님을 찾아 광야의 사막으로 나갔지만

이제 굳이 광야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됩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지금 여기 이 자리가 광야이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용광로와도 같은 광야의 고독과 외로움을 통해

순화되고 성화되어 깊어지는 내적 삶입니다.


간혹 광야의 고독이 그리워 수도원 피정 집을 찾기도 하지만

궁극의 광야는 지금 여기 내 삶의 자리입니다.

 


여기 내 광야에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요한이 하느님의 말씀을 받은 곳 역시 광야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첫 눈에 들어 온 반가운 말도 광야였습니다.

 


하느님을 찾는 사람들은 태생적으로 광야의 고독과 침묵을 사랑합니다.

광야를 사랑하십시오.


광야를 사랑할 때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는 낙원으로 변합니다.

텅 빈 허무의 광야는 텅 빈 충만의 낙원이 됩니다.

일찍이 토마스 머튼도 사막을 사막으로 받아들일 때

사막은 낙원으로 변한다 말했습니다.


광야의 고독을, 하느님을 사랑한 요한은

타고난 사막의 수도승이었음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자 광야에서 외치는 하느님의 소리가 된 요한입니다.


너무 세속적인 것으로 꽉 차 있어 시끄럽고 복잡한 내면들이기에

하느님의 말씀이 내리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을, 영혼을 고독과 침묵의 텅 빈 광야로 만들어야

비로소 들리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바룩 예언자가 바빌론 유배의 광야생활에서

이처럼 아름다운 구원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을 만났기에 가능했습니다.


주님은 바룩을 통해 광야의 여정 중에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해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의 겉옷을 걸치고,

  영원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관을 네 머리에 써라.”

 


사실 주님은 광야여정 중에 지친 우리를

당신의 생명의 오아시스 대림 제2주일 미사축제에 초대해 주셔서

우리 모두에게 당신 영광의 아름다움을 입혀주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걸쳐주시며 영광스러운 관을 우리 머리에 씌워 주십니다.

 

 

 

 

 



둘째, 주님의 길을 마련하십시오.

 


여기 요셉수도원의 수도승들은 물론이고

진정 믿는 이들 모두가 광야에 주님의 길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요한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대림 제2주일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대림 시기는 집중적으로 주님의 길을 내며 오시는 주님을 마중 나가는

가슴 설레는 기쁨의 시기입니다.


대림 촛불 2개가 주님께서 가까이 오셨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과연 주님의 길을 잘 마련하고 계신지요.


구체적으로 회개의 실천을 통해 주님의 길을 내는 것입니다.

이래야 요르단 강 부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요한의 취지에도 맞습니다.

 


허무의 골짜기는 사랑으로 메우고,

산과 언덕의 교만은 모두 겸손으로 낮아지게 하며

굽은 데는 정의의 실천으로 곧게 하고

거친 길은 온유와 평화로 평탄케 하면 충분합니다.

 


하루하루 이렇게 회개의 실천으로 길을 내가는 것입니다.

훤히 난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주님과 형제들과 함께 주님의 길을 내며 가는 것입니다.

 


살아 온 굽이굽이 뒤안길은 한 눈에 보이지만

우리의 앞길은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행여 앞길 을 보여준다고 하는

점쟁이들이나 사기꾼들의 말에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우리의 앞길은 하느님 한 분 만이 아시며

우리가 할 일은 겸손히, 묵묵히 하루하루

주님과 함께 주님의 길을 내는 일뿐입니다.

 


이렇게 하루의 일상에 충실하다보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서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수 있게 됩니다.

 


하여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할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게 하루하루 주님의 길을 잘 닦는 이들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입니다.

 

 

 

 

 



셋째,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보십시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이미 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구원의 완성은 아닙니다.


이미 대림의 기쁨과 더불어 성탄은 시작됐지만

궁극의 성탄은 기다려야 합니다.

 


광야 여정 중에 주님의 길을 충실히 닦아갈 때

언젠가의 그날은 바로 오늘이 됩니다.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그날의 구원의 기쁨을 앞당겨 오늘 구원을 살라고 매일 봉헌되는

미사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오늘 복음의 절정이자 요약입니다.

이미 하느님의 구원을 보기에 역동적인 광야여정입니다.

 


예수님이, 요한이, 바룩이, 아니 모든 예언자들이 이렇게 사셨습니다.

언젠가 그날의 하느님의 구원을 오늘 지금 여기서 앞당겨 사신 분들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을 앞당겨 사는 데

찬양과 감사의 노래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바빌론의 엄혹한 광야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보면서

희망의 기쁨에 넘쳐 부른 바룩의 시이자 노래가 바로 1독서입니다.


우리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바룩의 노래입니다.

 


“예루살렘아,

  일어나 높은 곳에 서서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보아라.

  네 자녀들이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신 것을 기뻐하면서,

  해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을 보아라.”

 


사방에서 모여와 하느님의 구원을 보며 미사에 참석하고 있는 우리들입니다.


바룩의 말씀은 영적 스케줄이나 청사진이 아닌 희망의 노래며,

특별한 정보가 아닌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서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보며 노래한 바룩입니다.

 


이런 예언자들의 구원의 희망에 대한 노래와 메시지가

우리에겐 무한한 위로와 힘의 원천입니다.


이래서 광야여정, 주님의 길을 내는 데

매일 함께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찬양 노래가 최고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찬양 노래하면서 하느님의 구원을 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대림 제2주일 우리의 구원의 여정에 구체적 지침을 주셨습니다.

 


광야의 삶에 충실하십시오.

 


주님의 길을 마련하십시오.

 


하느님의 구원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시간 구원의 광야여정 중,

주님의 길을 충실히 닦아 온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구원을 보여주시고

남은 광야여정 중에도 충실할 수 있도록 풍성한 은총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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